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리 Jan 21. 2022

존 엘더 로비슨 John Elder Robison

[나를 똑바로 봐] &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존 엘더 로비슨: 미국 작가. 유명 밴드의 음향과 특수 효과를 책임졌던 전문가, 전자 게임 엔지니어에서 자동차 정비 업체 오너, 그리고 사진작가까지 그의 타이틀은 스펙터클 하다. 첫 번째 작품 [나를 똑바로 봐]부터 최근 발표한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까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서 그의 행보를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도움이 될 테라피까지

존 엘더 로비슨 개인 블로그
http://jerobison.blogspot.com/?m=1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자전적 에세이다.


존 엘더 로비슨은 바람 잘 날 없는 위태로운 성장기를 겪은 뒤 마흔 살이 넘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 나를 똑바로 봐, Look me in the eye. 제목부터 우리 사회가 아스퍼거 증후근을 가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지 알려준다. 이들은 감각적 예민함이든 눈동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이든 사람들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젊은 교수였던 아버지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몇 년 뒤 부모는 알코올 중독과 정신병으로 작가에게 씻지 못할 아픔을 주고, 연이은 가정폭력과 학대, 방치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낙인찍혀 학교를 그만두지만, 굳건한 의지와 남다른 창조력으로 유명 밴드 '키스'의 음향과 특수 효과 전문가로 일하기도 한다. 이후 전자 게임 업체 엔지니어로 취직하고 자신만의 자동차 정비 업체를 차리기까지,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성장기가 펼쳐진다. 여기에 아스퍼거 증후군이 얹어진다.



내 인생의 초반기 16년 동안, 부모님은 나를 적어도 12군데의 이른바 정신보건 전문가들에게 데려갔다.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보려고 들지 않았다. 굳이 그들을 변호하자면,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직 정확히 진단되지 않아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자폐증은 엄연히 진단이 내려졌음에도 아무도 내가 일종의 자폐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폐증을 훨씬 더 극단적인 증상으로 여겼다. 말이라곤 일절 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의 증상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심을 기울이며 자세히 관찰하기보다는, 내가 그저 게으르다거나 성을 잘 낸다거나 반항적이라고 말했다. 그들로서는 훨씬 쉽고 논쟁의 여지도 적은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하나도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나를 똑바로 봐] P128




로비슨은 ‘내가 좀 더 일찍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알았더라면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자폐증의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것을 어떤 면에서는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아스퍼거 증후군으로서 피할 수 없는 불편함도 분명 경험한다. 일단 자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그렇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채야 할 상황, 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괴짜이거나 대단히 특이한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따돌림당하기도 하고, 그룹 내에서 팀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말도 듣는다.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임을 알고 난 후, 심리치료사 친구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대목에선 그의 조바심이 잘 드러난다.



그래, 치료법이 있대?
그건 질병이 아니야. 치료는 필요 없어. 그건 그냥 자네가 어떻다는 거야. P317



질병과 장애. 질병은 치료해서 없애야 하는 것이고 장애는 어떤 이유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다. 장애라는 것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없애야 할 것은 아니다. 그게 가능한 일도 아니고. 결국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제 그는 당당히 설 자격이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든 뭐든 아무 상관없이.



평생토록 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인 듯이 느꼈다. 언제나 사기꾼 같다고 느끼거나, 더 심하게는 정체가 발각되기를 기다리는 반사회적 인격자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책(토니 애트우드의 아스퍼거 증훈군의 아이들 가리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첫 제물을 사냥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냉혹한 살인마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는 정상이었다. P320



로비슨은 결혼하고 아들도 낳지만 아들 또한 아스퍼거 증후군의 성향을 갖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의 두 번째 책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아들 ‘커비’도 아스퍼거 증후군 판정을 받았음을 알린다. 연이어 커비의 엄마이자 첫 번째 아내인 '메리’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는 존 엘더 로빈슨이 TMS(경두계자기자극술) 연구 실험에 참여한 뒤 겪은 후일담이다.


TMS란 쉽게 말해 전자석을 진동시켜 만든 미세한 에너지를 뇌의 특정 부위에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전자기 에너지가 뇌 회로에 새로운 연결성을 갖도록 이끌고, 특정 능력의 발달 혹은 억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감정 혹은 제스처를 읽지 못해 상호 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TMS를 통해 감성 지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현재 TMS는 우울증 치료 목적으로 상용화되었다)


로비슨은 직접 TMS 실험에 참여한 뒤 이후 겪었던 내적 변화를 가감 없이 서술한다. 연구에 따르면 TMS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작가는 며칠 안 되는 순간 동안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며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냉랭하게 살아왔는지 깨닫는다. TMS 효과는 이후 사라졌지만, 그것이 가져다준 특별한 경험을 기억하면서 로비슨은 자신의 삶을 보다 유연하게 바꿔 나간다.



나는 삶의 매 순간마다 마치 외부 관찰자처럼 살아왔다. 자갈들 사이로 조심스레 발을 내딛으며 걷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문제를 피해 가려고 했었다. 세상에 내가 느끼는 행복은 별로 없었다. 다행히 나는 기계를 다루고 움직이게 하는데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게 정말 완벽한 미스터리였다 늘 친구를 사귀고 인기인이 되기를 깊이 갈망했지만 그나마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일터에서조차 나는 마치 외로운 늑대 한 마리 같았다.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P43



로비슨에게 자폐는 삶의 일부이자 삶을 방해하는 장애이기도 하다. 자폐는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그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자신의 재능은 사랑하지만 그 재능은 때때로 고난을 일으킨다.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정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 나는 그의 양가감정에 연민을 느낀다.



나는 강연과 책에서 자폐는 일종의 삶의 방식과 같다고 했었다. 질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일부분일 뿐이니, 치료도 필요 없다고 말이다. 물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줬던 ‘사회적 무감각’만 완화시킨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최고의 나’로 변할 수 있다고도 느꼈다. P66



로비슨은 TMS 연구에 참여한 이후 스스로도 놀랄만한 변화를 경험하지만, TMS가 일종의 ‘신경적 균질화’로 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내놓는다. 오히려 남들과 다름이 뛰어난 능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창의적인 몇몇의 인물들이 자폐적 특성 및 기타 신경적 차이점을 가졌다는 증거도 늘어나고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사람들과 관계가 고통스럽지 않는... 이건 그저 꿈일 뿐일까? 나는 존 엘더 로빈슨이 나의 바람이자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그 길으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비슨은 TMS 도움을 발판 삼아 계속해서 그 감정들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때의 경험을 곱씹고 되새긴다. 그는 사람들과 만날 때에도 사람들의 표정을 알아채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도 멈추지 않고 자폐 연구 및 프로그램에 열렬히 참여하고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만약 어떤 병과 병을 가진 환자 중에서 하나를 공부해야 한다면 늘 후자를 택하라.” 서양 의학의 선구자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내게 존 엘더 로비슨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니라 그냥 존 엘더 로비슨이다. 그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 참 열심히 살고 있고 그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다고. 먼 이국 땅에서 지켜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요즘은 남들이 나와 정말 다른 능력을 지녔음을 인정할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감정을 읽어낼 줄 안다. 이제 내게 그런 능력은 다시 거의 바닥이다. 하지만 한때 내가 잘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늘 관찰하니까. 그렇게 사회적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다. 그건 정말 긍정적인 변화였다. P392


매거진의 이전글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