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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Mar 11. 2022

곤다 신고 Shingo Gonda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입니다

곤다 신고: 대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의 소프트웨어 분야와 제조회사의 헬프 데스크 부서에서 일했으나 인간관계 문제로 여러 부서를 전전하면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흔이 넘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서 직접 경험한, 현실적인 직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교적 우리와 가까운 일본 출신의 아스퍼거 증후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양과 비교해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는 동양 문화에서 신경다양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사회적 눈치가 부족한 이들은 억지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가거나, 그조차 힘든 신경다양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신경전형인들의 냉대와 차별을 묵묵히 견디어간다. 


사실 곤다 신고의 글은 매력적이지 않다. 자기 삶에 대한 반성은 다소 건조해 보이고 그의 열정도 뜨거워 보이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서툰 사람 같다. 그의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때로는 문장이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건 한국어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상황을 서술하는 방식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해도 이상한 면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발달장애라고 불리기도 해서 일반인의 감각을 익히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도 조금씩 천천히 발달한다. 나도 사회에 나가서 직장 선배와 상사에게 주의를 받으며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사회성을 터득했다.


이런 점은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아이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물으면 객관적인 사실들을 서술하는 데 그치곤 했다. 여기에 신발장이 있고, 여기에 책상이 있고, 내 자리는 여기고. 아이가 글을 쓰는 방식도 비슷하다. 사실 중심으로 서술하되 자신에게 익숙한 문장 패턴을 살짝 변형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아이가 수영장에서 튜브를 타고 있는 그림과 여자 아이가 음식을 먹고 있는 그림, 이 두 그림을 보며 글을 쓰는 방식이 비슷하다. 아이가 수용장에서 튜브를 타고 있어요. 아이가 음식을 먹고 있어요. 여기에 감정적인 부분을 덧붙이면 이렇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맛있을 것 같아요. 또래의 다른 아이가 쓴 글은 사뭇 다르다. 자기도 튜브를 타고 싶다고 말하거나 언젠가 수영장에서 튜브를 탔던 자신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림 속의 아이와 나 사이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이다. 내 아이는 눈에 보이는 그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짙어서 그림을 보며 자신의 추억담을 꺼내지 못한다.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입니다]를 읽으며 내용보다는 문체에 자꾸 신경이 갔다. 내용은 직장인으로서 신경다양인이 겪은 이야기를 전한다. 템플 그래딘과 존 엘더 로빈슨이 엄청난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었다면, 곤다 신고는 비교적 평범한 재능을 가진 다만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통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우리가 언제라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의 글이라서 뚝뚝! 떨어지는 매력은 찾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일상이 가진 단단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못하는 사람', '눈치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한 사람이 보인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뜨겁게 타오르지는 않아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열정으로. 


오랜 방황 끝에 그가 직업도 찾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아저씨가 되어 반갑다. 그의 말 따라 그는 '마흔 살에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아 정신장애 보건복지수첩을 소지하고 있기는 해도, 피트니스에서 에어로빅스를 하는 평범한 아저씨'일뿐이니까. 




조금씩 조금씩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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