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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Nov 12. 2021

독특해도 괜찮아

written by 배리 프리젠트

베리 프리젠트: 의학박사이자 언어치료 전문가, 자폐증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40년 넘게 활동한 전문가의 통찰력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폐 아동을 위한 교육 방식으로서 SCERTS 모델의 공동 개발자이기도 하다. SCERTS는 의사소통(Social Communication), 정서 조절(Emotional Regulation), 교류 지원(Transactional Support) 세 영역의 발달을 의미한다. 
https://barryprizant.com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 책이 전하는 바는 하나다. 자폐증 아이들이 하는 행동 중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평균적인 사람들도 불안하고 떨리는 상황에서 긴장을 덜기 위해 숨을 크게 쉬거나, 앞뒤로 왔다 갔다 하거나 혼잣말을 한다. 물론 그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게 다르지만,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자폐는 병이 아니다. 사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다.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다 자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는 신경계 쪽의 원인(뇌의 연결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신경 발달 상의 문제로 날마다 겪어야 하는 정서적, 생리적인 문제들에 취약하다. 결국 조절이 조금 힘들 뿐 행동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다. 


배리 프리젠트가 보는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시선은 대단히 인간적이다. 당신이나 나나 모두 인간이라는 것. 다만 자폐 스펙트럼 상에 있는 이들은 특정 부분에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도와주고 기다려주고 배려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 


아이가 하는 특정한 행동들을 무조건 '자폐성'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문제 행동으로 간주해 버린다. (중략)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결과에 따르면, 자폐성 행동이라는 것은 없다. P30 


나는 작가가 가진 자폐에 대한 태도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자폐 스펙트럼 진단에서 자유롭지 않은 아이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아이가 ‘정상화’ 되기를 바란다. 아직 이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나는 아이의 행동만이라도 타인의 눈에 띄지 않길 간절히 희망한다.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며 사회적 이해와 사회적 사고가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눈을 쳐다봐야 하는 건 사회적 기술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도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으로 잠깐 상대를 보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 같은 추임새를 넣는 것은 사회적 이해화 사회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상대의 눈을 쳐다보기 힘들다면, ‘당신을 보지 않아도 집중해서 듣고 있어요’라고 미리 설명할 수도 있다. 내 특징을 상대에게 알려서 오해를 받지 않는 사회적 사고는 사회적 기술 위에 있다. 


나는 항상 아이에게 ‘생각하라’는 미션을 주곤 했다. 무슨 일을 할 때는 꼭 생각해보고 상황에 맞는지 아닌지 고민해보라고. 여기에는 ‘창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녔다. 장난감을 갖고 놀 때도 항상 똑같은 방법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뭔가 다른 방법도 한번 찾아보라고. 그런데 정작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의 특정 행동을 어떻게 근절할까’에 대한 궁리만 했을 뿐, 나는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 책은 갖가지 특징을 가진 아이들과 소통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여러 사례 중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실행해 보려고 한다. 엄마에게도 ‘창의적으로' 생각하기는 필수이니까.  


아이가 가진 개성에 대해서는 작가의 말처럼, 최대한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키워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네 독특한 관심사를 인정해.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맞지 않아. 이것이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핵심이다. 다만 [독특해도 괜찮아]를 읽으면서 부모인 나조차도 아이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점은 통렬하게 깨달았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 개 정도의 뉴런(신경 세포)이 있다고 한다. 복잡한 신경 발당 상의 문제를 몇 문장으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각 개인이 가진 고유의 성향과 환경적 영향 등이 얼기설기 얽혀있다.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사람의 내면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조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관심사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이,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들이 보내는 신호마저 잘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떠드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P61 


책을 읽으며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많았다. 버스에서 들리는 에어 브레이크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다른 사람이 살짝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것에 아픔을 호소하는 게 감각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반복해서 묻거나 말하는 게 ‘불안’ 때문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관심사를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간주했으나, 어쩌면 아이는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데 대한 불안’으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주제에 대해 얘기했던 건지도 모른다.  


낯선 사람과 만나 대화할 때, 계절이나 날씨 얘기를 꺼내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람들의 사적인 범위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안전하고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별다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굳이 할 필요 없는 겉치레 같다는 생각도 든다.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적어도 마음은 편할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면 그 얘기를 하면 되고 아이가 있다면 아이 이야기를 하면 된다. 마음속으로 이 사람에게 어떤 얘기를 해야 하나 수없이 저울질하는 것보다는 내게 익숙한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게 쉬울 테니까. 


내 아이도 같은 맥락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대해 말하는 건 불편하지 않다. 나는 그런 아이를 두고 ‘반복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반응했으니. 


전문가들은 각 단계를 거치며 성장하는 아이의 강점과 욕구를 이해하면서, 발달에 따라 순차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방식이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한데도 일부 전문가들은 아이를 결점의 집합체로만 여긴다.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죽 정해 주는 것은 자신 앞에 있는 아이를 완전체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표준화된 방식으로만 판단하는 것이다. P243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내려진 병명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아이에게 최대한 좋은 미래를 만들어 주려면 어떤 것들을 해줘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자폐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발달은 평생 계속되는 과정이다. P244 


나는 지금껏 아이가 하는 행동을 제재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엄격한 잣대로 이런 행동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만약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아이의 행동을 수정하려 하면서도 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과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조바심 어린 눈으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저울질하며 'No'라고 외치기 직전의 자세를 취했던 나를 반성한다. 너도 나와 같은 인간일 뿐인데. 


2013년에 발표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한 연구에서는 자폐증에 있는 전체 아동 가운데 증상이 호전되어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분류하는 자폐증 기준에 해당되지 않게 된 아이들이 극소수 있긴 하지만 어떤 아이들이 그렇게 회복되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는 회복이란, ‘자폐성 행동’이 나타나는 횟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서 더 이상 자폐증으로 진단받지 않게 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자폐 범주성 장애가 있어도 성공한 많은 사람은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회복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중략) 자폐증의 대표적인 증상들이 없어서 ‘정상’으로 비치는 많은 성인은 회복을 강조하는 것에 불편해한다. 자폐증은 자신들의 일부이며 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333



우리가 세워야 할 목표는 아이를 고쳐서 ‘정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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