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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리 Nov 26. 2021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클로리아 캘브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

클로리아 캘브: 의학과 정신건강, 과학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미국 저널리스트. 그녀는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의 마지막을 장식할 인물로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골랐다. 아인슈타인 생전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를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 진단할 수는 없지만, 아인슈타인이 보인 몇 가지 행동 특성과 성격적 특이함이 자폐 스펙트럼 증상과 일치한다고 한다. 클로리아 캘브는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중립적으로 제시한다.



먼저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해야겠다.


자폐증적 특징들을 보이지만 전형적인 자폐아처럼 장애가 뚜렷하지 않은 아스퍼거 증후군은 1994년, 자폐증과 관련된 별개의 질환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이후 많은 전문가들은 고기능 자폐와 아스퍼거 장애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보았고, 2013년 두 질환을 합친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새로운 포괄적 진단명이 탄생했다.


남다름과 뛰어남은 서로 뒤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에 힘을 얻은 아스퍼거 자조모임들은 역사적 우상 중에서 아스퍼거 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인물들을 상징적 존재로 받아들였는데, 그 명단의 맨 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P326


아인슈타인이 보인 증상은 자폐 스펙트럼에서 아스퍼거 끝 부분과 가장 비슷하다고 알려졌다. 사회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열정적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아이. 말이 늦었고 혼잣말로 문장을 되풀이하던 아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놀기 좋아하는 외톨이 소년. 아인슈타인은 학교 생활에서도 학업에 대한 규범이나 기준을 지키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곤 했다. 결혼 생활도 불안정했다. 첫 아내인 밀레바와 이혼 후 두 번째 아내 엘자와 죽을 때까지 함께했지만, 그는 결혼 생활 중 여러 번 다른 여성들을 만나 바람을 피웠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특출난 실력을 발휘했지만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남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를 위해 일하는 조력자들이 늘 곁을 지켜야 했다.


작가는 아인슈타인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 추론하지만, 어른이 된 아인슈타인도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까에 대해서는 대답을 아낀다.


그가 보인 특징들 가운데 많은 여자와 불륜 관계를 맺은 것과 유머 감각 등 일부는 자폐증의 일반적이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정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므로, 불륜과 유머는 그들에게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을 알았던 사람들은 그가 재미난 농담을 무척 좋아했고, 요란한 웃음소리로 사방을 흔들었다고 회고한다. 올리버 색스는 아인슈타인 또는 뉴턴이나 철학자 류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상당히 자폐증적”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P348


아인슈타인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이를 증명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보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고유한 특성들을 유지하면서도 세상에 자신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작가는 그 사례로 템플 그랜딘을 제시한다. 그랜딘은 세 살 반까지 말을 못 했고 자폐증으로 고통받았지만 현재 동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폐 관련 연설자로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자폐와 관련된 유전적 속성들을 전부 제거해버리면 과학자도 모두 사라질지 몰라요.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컴퓨터 전문가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많은 화가와 음악가를 잃게 될 겁니다.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거죠.”  P351 (템플 그랜딘 인터뷰)




자료 조사를 하면서 나는 행동과 진단과 치료와 관련해서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인간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정 먼저 떠오른 단어다. 갖가지 이름의 정신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를 재능으로 특화시키는 것도 인간이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원인, 서로 다른 증상, 서로 다른 환경.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가 정신장애에 대한 설명서가 아닌, 한 인간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로 읽히는 것도 이 책이 대단히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아니더라도, 경계성 인격 장애부터 강박 장애, 자기애성 인격 장애, 불안 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까지 여러 질환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대단히 신중하며 무엇보다 가치중립적이다. 흑인 노예 해방을 이끈 에이브리헴 링컨의 경우 일생 동안 우울한 기분에 시달렸는데, 그의 절망이 오히려 그를 더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었을 거란 주장과 한 나라를 이끌었던 그가 우울증 환자일 수 없다는 의견을 모두 제시하는 식이다.


특히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경우 이런 입장이 더 두드러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대표작 ‘랩소디 인 블루’를 남긴 조지 거슈윈은 여러 면에서 ADHD에 비등한 증상을 갖고 있었다. 그가 만약 ADHD 치료제인 리탈린을 복용했다면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할 수 있었을까와 같은 의문은 정신장애 대한 필자의 유연한 태도를 뒷받침한다.     


‘정상적인’인 행동과 정신적인 문제를 가르는 경계선은 어디일까? 수줍음이 개인적 특성일 때는 언제이고 사회불안장애일 때는 언제일까?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버릇을 그저 나쁜 버릇이 아니라 병적인 증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슬픔을 항우울제로 치료해야 할 시점은 언제일까? (중략) 정신건강 평가는 주로 환자의 증상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그리고 환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이다. P11


물론 정신 질환은 심신을 망가뜨리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자신의 특장점이자 존재 이유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ADHD를 장애가 아닌, 활동성과 독창성과 비전의 자양분이라는 주장도 있고, 검증되지는 않았으나 과학적 재능과 자폐 스펙트럼의 연관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도 분명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신경 질환과 그 환자들의 행동을 정상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의 개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와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폐에 관련된 속성들이 인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 속성이 ‘비정상적’이라 치부되더라도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이 사실만은 명확하다.  


사람은 생물학적, 유전학적으로, 그리고 행동 측면서도 복잡한 수수께끼이므로 심리학적 꼬리표를 붙이는 것으로는 우리의 풍부한 복잡성을 결코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다. 그런 꼬리표로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비범한 정신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규정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궁극적으로 아인슈타인과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탐구는 절대적인 진단명을 확정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아무리 ‘정상적’으로 보이든 ‘유별나게’ 보이든 간에 얼마나 놀라운 높이까지 솟아오를 수 있는가를 드러내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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