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11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혹 관계가 어긋나고, 또 어쩌다 다시 연을 맺는 인연들은 참으로 신기한 무엇이다. 그 먼 땅에서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멀리 스페인으로 오지 않았다면, 그곳에 길게 머물지 않았다면, 단지 스치는 인연조차 되지 않았을 사람들과 어느새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커피를 마시고, 같이 웃기도 하는 것이 문득 신기할 때가 있었다.
“Mi casa es tu casa 미 까사 에스 뚜 까사 (내 집이 네 집이야)”
스페인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굉장히 열려있고, 다정하며 쉽게 친구가 된다고 많이들 말한다. 이 문장만 봐도 그렇다. 만나자마자 ‘내 집이 네 집이야’라고 말하는 그들의 과한 친절이 처음에는 고마울 수 있으나, 살아보면 그곳에서 친구의 집에 편하게 놀라갈 만큼의 관계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그의 집이 내 집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운 좋게도 나에게는 자신의 집을 정말 내 집처럼 오픈해주었던 두 친구가 있었다. 둘 다 함께 예술학교에서 도자기를 배운 친구들이다. 일정 정도의 시간을 같은 삶의 공간과 리듬에서 함께 해야 일상이 쌓인 벗이 된다는 것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인 듯했다.
출라 언니는 예술 학교에 등록하러 간 날, 서류를 쓰느라 끙끙거리는 나를 옆에서 조심스럽게 도와준 사람이었다. 이름은 본래 출라가 아닌데 언니의 성인 '라 보르데'의 스페인에서의 의미가 '출라'라고 했다. '정말 이쁘거나 산뜻하다'라는 지방어인데 나는 그 의미가 좋아서 언니를 항상 '출라'라고 불렀다. 세비야에 있는 동안 나는 언니의 집을 자기 집처럼 자주 들락거렸다. 정원이 있는 멋스러운 그녀의 집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거실과 방 빼곡히 책들이 차 있어서 좋은 책을 추천받아 빌려 읽곤 했다. 처음 도자기 역사 필기시험을 볼 때 난감해하던 나를 집에 데리고 가 거의 24장이 되는 필기 자료를 하나하나 읽으며 설명해주었고 시험 통과를 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때론 언니였고 선생님이었고 엄마였고, 여행 벗이었던 친구였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으로 일하는 수사나는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출신이었다. 학교에서 출라 언니와 함께 삼인방으로 지냈다. 한 수업에서 도자기와 관련된 사업 아이템을 연구하여 실제 제안서를 만들어 보는 과제를 둘이 팀이 되어했는데 정말 언젠가 함께 공방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때 제안서에 담긴 공방 이름은 '바르꼬 데 아로스(barco de arroz: 쌀 배)'였다. 스페인에서는 무언가 크게 손실하였을 때 그 큰 것의 대용으로 쓰는 말이다. 예전 쌀을 싣고 오던 배가 침몰한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귀중한 것이라는 의미이니 공방 이름으로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 수사나에게 메일이 왔다. 근무하는 학교에 도자기 반을 만들고 16명의 학생이 모였다며 그때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났다고 했다. 그 메일에 뭔가 좀 마음이 몽글해졌다. 그리고 답장했다.
"우리의 쌀 배는 세비야에서, 서울에서 그렇게 운항 중이야"
스페인에서 두 벗이 “Mi casa es tu casa 미 까사 에스 뚜 까사 (내 집이 네 집이야)”라며 그들의 일상으로 기꺼이 나를 초대했 듯 언젠가 나의 일상으로 벗들을 초대하여 잠시 머물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