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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Dec 19. 2019

무엇이 있나요? -¿Qué hay?

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 2-2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찾은 취미생활은 동네 문화센터 그림 수업이었다.


¿Qué hay 께 아이(뭐가 있나요)?


어학원에 가는 일상이 좀 익숙해지고 다른 뭐 할 거리가 있을까 두리번거릴 때 매해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진행되는 구 단위 문화센터 강좌 프로그램 신청기간 마감이 하루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기 강좌들은 모두 마감이 되고 자리가 남은 것이 그림 수업이었다. 뭘 꼭 배운다기보다는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던 터라 별생각 없이 ‘있기 때문에’ 덜컥 신청을 했다.


그림반에는 이미 몇 해째 수업을 참여하는 수강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였는데 취미로 하신다기에는 이미 실력급이었다. 수업의 주재료는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유화 재료였다. 선생님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 온, 그것도 외국인이 반가우면서도 어려워 보였다. 연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나타난 나를 어찌해야 할까 꽤나 난감한 듯했지만 이내 반 사람들의 참견으로 기본적으로 사야 할 재료를 적어주고, 근처 화방 약도까지 꼼꼼히 그려주셨다. 그렇게 나의 그림 그리기는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나의 관심사를 검색어로 한 구체적인 어떤 것을 찾았다면 스페인에서는 일단 그곳에 무엇이 있는 지를 묻는 질문 “Qué hay 께 아이(뭐가 있나요)?”이 먼저였다. 그렇게 발견된 ‘있는 것’으로부터 선택된 것은 의외의 시간과 배움, 사람들을 선물해 주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친구와 주말에 홍대의 한 미술학원에서 벽돌 몇 장을 그려본 것이 미술수업 경험의 전부였던 나에게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 만난 모임 덕분에 동네 예술가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동네의 갤러리 바에서 생애 첫 전시도 할 수 있었다.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참여하시는 분이 가진 공간에 모여 같이 수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그림을 배우러 가는 길에 잠시 들러 커피를 마시는 ‘la abuela 라 아부엘라 (할머니)’라는 이름의 바가 있었다. 일 년 정도 수업 가는 길에 왔다 갔다 하며 들렀더니 그곳의 주인 할머니, 그리고 단골들과도 꽤 친해졌다. 스페인 음식 중 여름이면 등장하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달팽이이다. 스펠링에 R이 없는 달, 즉 5월에서 8월까지가 제철이라 5월이 시작되면 바들에는 “Hay caracoles 아이 까라꼴레스 (달팽이 있어요)”라는 표시가 붙는다. 내가 그림 수업을 다닌다는 것을 아는 할머니는 메뉴 적는 칠판에 달팽이 한 마리를 그려달라고 부탁하셨다. 칠판에 어설프게 그린 달팽이가 영 맘에 안 들었던 나는 일 년 그림 수업의 재능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꾸물거리고 올라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종이 한 장을 사서 알록달록 달팽이 한 마리를 그리고 “hay caracoles 아이 까라꼴레스 (달팽이 있어요)”를 써서 선물로 드렸더니 곧바로 그 광고지는 바의 문 앞에 붙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 이 말씀을 드리니 같이 들으시던 분이 오는 길에 봤다며 “그 예술 달팽이를 그린 사람이 너였냐”며 웃으셨다.


그 해 스페인 세비야에는 그렇게 수준급 할머니, 할아버지 예술가들이 있는 회화수업이 있었고, 한 여름 어느 골목길 바에 내가 그린 예쁜 달팽이 메뉴 광고지가 있었다.


‘있는 것’이 다른 시간.

그 다른 ‘있는 것’을 찾고 만나는 시간이 여행이며, 삶이기도 하다.

혹시 내 관심사 밖에 존재하고 있어 눈치 채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Qué hay 께 아이(뭐가 있나요)?

한국의 서울에서도 문득 이 질문을 꺼내어 본다.


스페인어에서 ‘hay아이’ 동사는 ‘~이 존재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주어가 없는 동사이다. 동사 변형이 없다. ‘hay + 있는 것’을 쓰면 된다. 여행을 가서 주문을 한다면 원하는 메뉴가 있는지를 물어볼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hay 커피?” (커피 있어요?) 이렇게 말이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스페인어에 ‘Hay 4 gatos’(고양이가 4마리 있다) 표현이 있다. 과연 무슨 뜻일까. "사람이 거의 없다 뜻이다. 고양이가  마리도 아니고  마리가 있는데 부재를 뜻한다고? 그렇다.


수업에서 그린 작품 '비 오는 콤포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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