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2-4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삶의 여러 면들이 자의든 타의든 변화하고 있다.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의무화되는 것들이 많아지는 삶은 그동안 나름 ‘자유’라는 것을 향유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하기도 한다.
그 변화 중 가장 큰 테마라면 ‘나가고 머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스페인 친구들이 연락을 해왔다. 꼼짝없이 집에 머물게 된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낯설 것인지 나는 상상이 되었다. 게다가 4월은 스페인의 큰 축제들이 있는 기간이 아닌가. 성주간 행사인 세마나 산타와 봄 축제까지 줄줄이 취소가 되었다. 축제장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집 발코니를 축제장처럼 장식하기도 하고 집안에서 축제의상을 입기도 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갈 수 없는 일상을 위로하는 듯했다.
“그나마 나는 로사(키우는 강아지 이름) 때문에 세 번 산책하잖아.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힘들었을 거야(애완견 산책은 외출의 허용 이유가 된단다).”
“부모님들이 연세가 많으셔서 꼼짝도 못 해. 여기 고령자 사망률이 높잖아.”
“집에서 그림 그리려고 작업실 재료를 다 가져다 놓았는데 그림이 그려질까. 이게 웬일이야.”
친구들은 저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을 각자의 당황스러움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스페인 친구들의 삶에 Salir살리르(나가다)라는 단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스페인에 살 때 친구들은 항상 ‘나가는’ 삶을 살았다.
“오늘 뭐 할 거야?”
“Salgo살고 (나갈 거야)”
“그러니까 나가서 뭐 할 거냐고?”
“나가면 뭐든 있겠지.”
이런 식이었다.
한국어로 말하면 이때 사용하는 salir동사는 ‘놀러 나가다’ 의미쯤 되겠으나, 딱히 어떤 약속이 있거나 구체적 계획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동네 자주 가는 바에서 즉흥적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또 그 친구들과 다른 바로 옮겨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나가는 일이 곧 즐기는 일이었으니 더 이상의 덧붙임이 그들에게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참 줄기차게도 나가는 삶이었다.
나는 이 의미 없이 ‘나가는’ 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어김없이 자신들의 ‘나가는’ 일에 나를 초대했지만 “미안, Me quedo 메 께도 (그냥 있을게)” 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는 ‘무엇을 하러’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친구들에게는 낯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내가 지금 스페인에 있었다면 친구들이 말했던 이유 없는 ‘나가는 일’을 조금은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가거나 머물거나’의 선택이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스페인 친구들의 SNS에 보이는 Me guedo en casa메 께도 엔 까사 (나는 집에 머물러요.)라는 문장 안에 “그냥 나가”라던 그들의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얼핏 보이는 듯하다.
다음 주부터는 스페인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외출이 허용되고 10인 이하의 모임도 허용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숨통이 트이고, 나는 이곳에서 그들은 그곳에서 삶의 출구(Salida, 살리다)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가거나 머물거나’ 우리에게 알맞은 일상이 회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