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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un 01. 2020

어디 보자...-A ver..

도자기 그리고 스페인어 한마디 #2 기대 없는 기대

Museo larco, Lima, Peru


스페인에 살 때 가장 싫어하던 말은  "어디 보자..(A ver..아 베르..)"였다.

 스페인 친구들은 참 쉽게도 문장 앞에 이 말을 붙이고 

달콤한 기대의 말들을 붙이곤 했다.

처음에 이 말의 뉘앙스를 잘 모르던 나는 그들의 다짐을, 약속을, 기대를

곧이곧대로 믿곤 했다.


"A ver 내가 해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A ver 내일 저녁에 만나지 뭐"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A ver로 시작되는 문장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 약속, 기대하지 않아야 하는 기대, 

영혼 없는 다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A ver 로 시작하는 그들의 가벼운 문장이 싫었다.


하지만 요즘은 문득

'기대 없는 기대'가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두고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꼭 지킬 약속만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이 오히려 명확하지 않은 내일에 대한 적당한 기대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러니 

 A ver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기대 없는 기대를 가지고서 말이다.  



* [도자기와 스페인어 한마디]는 '내가 쓰는 스페인어 한마디' 안 작은 클립입니다. 제가 길 위에서 만난 도자기, 그리고 만든 도자기들과 스페인어 한마디를 이어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도자기는 이렇게 일상에 말을 건네는 도자기거든요. 당신에게는 어떤 말을 건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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