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샘'이라는 말

by 로하

나는 교원자격증이 있다. 한 달간 교생실습도 했다. 심지어 중학교에서 1년간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가르치는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답답한 학교라는 공간과 학생들과의 엇갈리는 호흡들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20대 잠깐 찾아왔던 나의 교사생활은 짧게 끝났다. 그리고 10여 년의 시간을 교육의 현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회사생활을 했으니 나의 교사 이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야겠다.


다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된 것은 스페인에서였다. 한국어 과외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을 때 친구의 소개로 ‘아시아 언어학원’을 운영하는 스페인 대표를 알게 되었고, 당시 중국어와 일본어 수업만 있었던 학원에 처음으로 한국어 수업을 개설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했는데 모집 공고를 내자마자 순식간에 13명이라는 학생이 모였다. 대부분 세비야 대학교 동아시아학과 학생들이었고 학교 커리큘럼에 중국어와 일본어는 있는데 한국어가 없어 불만이었던 KPOP를 사랑하는 20대 청춘들이었다.


10여 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일은 과외와는 달랐고 언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일도 처음이라 첫 시간은 꽤나 긴장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첫 시간 반응을 보고 대표는 내가 다른 곳에 갈까 봐 시급을 바로 올려주었으니 말이다.

‘가르치는 일에 소실이 있나 봐’

첫 강의를 하고 혼자 몰래 우쭐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 정도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국어뿐은 아니었다. 친구가 근무하는 스페인 고등학교에서 도자기도 가르치고, 요리 전문학교 선생님의 부탁으로 한국음식 요리 특강을 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위해 내가 만든 자료도 늘고 다양한 가르침의 소재와 방식을 고민하는 일이 재미가 있었다. 처음 교사 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국에 와서 스페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에는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도자기 작업실을 오픈하고 조금씩 학교 도자기 수업 요청도 들어왔다. 어설프고 겁 많고, 불편하던 20대 선생님이었던 나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과 만나고 호흡하는 다른 모습의 선생님이 되어 가고 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 스페인어를 가르칠 때는 내가 언어를 통해 삶이 확장되고 변화되었던 지점들을 같이 공유하고 싶고, 누군가의 삶에도 그런 확장의 코드로 스페인어가 작동하기를 바라는 맘이다. 스페인과 남미 땅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도자기는 도자기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에서 벗어나 역시나 도자기를 매개로 이야기하고 싶은 나의 경험들이 있기에 설렌다.

그렇게 지금 나에게 가르치는 일이 어떤 직업으로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나는 오랫동안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보며 면접에서 가르치는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늘 하시던 말씀 ‘배워서 남 준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그저 기억에 남았던 멋진 하나의 문장을 깊은 고민 없이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이제야 남에게 주고 싶은 것을 가진 사람의 가르치는 마음은 나누는 마음이기에 그 일을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보다는 도자기를 매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도예가가 되고 싶은 것. 그건 확실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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