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불의 회복

by 로하

도자기가 도자기인 것은 불로 완성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1000도가 넘는 온도를 견디고 나온 흙은 더 이상 흙이 아니다. 불을 통해 전혀 다른 성질의 무엇으로 탄생하는 과정, 그 변이의 과정이 도자기의 핵심인 것이다. 속성이 바뀐다는 것은 그것의 쓰임과 본질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자기에서 흙과 불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높은 온도에 견디는 흙을 찾고 만들고, 그것을 더 높은 온도로 구워 더 단단한 도자기가 되도록 하는 여정이 오롯이 도예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도예를 배우기 전까지는 이 과정이 땅에서 흙을 직접 파내어 작업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들고, 그 흙을 빚어 산속 가마에 장작으로 몇 날 며칠을 불을 때어야 탄생하는 도자기 이미지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도예를 배워보니 현대 사회에서 도예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흙과 불로 탄생되는 도자기의 원형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훨씬 많은 옵션들이 생겨난 것이다. 흙도 이미 준비된 것을 구입할 수 있고, 가마도 가스뿐 아니라 전기로 자동시스템이 되어 있으니 굳이 밤새 불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화려한 색을 위한 유약들도 색별로 이미 만들어져 판매가 되고 있어서 그저 도자기라는 물건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흙과 불’이라는 낭만적 키워드가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나의 작업실에도 전기 가마가 하나 있다. 아마 작업실에서 가장 고가의 장비가 아닐까 싶다. 개인 작업실이 있지 않고서는 직접 가마를 운용해볼 기회가 많지 않다. 학교에서는 주로 학생들의 작업을 한꺼번에 소성하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프로그래밍을 설명하고 가마 관리는 직접 하셨다. 그래서 더욱 첫 가마를 가지게 되면 그 즐거움만큼이나 긴장감도 크기 마련이다. 전기가마는 말로만 들어도 무서운 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더하다. 설치부터 많은 양의 전기를 쓰는 열기구라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한번 가마를 돌리면 10시간에서 12시간 1200도가 넘게 올라가는 용광로 수준의 장비를 안고 사는 일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고 편한 일은 아니다.

2년 정도 탈없이 가마가 돌아가고 어느 정도 가마랑 친해졌다고 생각했을 때쯤 가마 수리를 해야 했고, 화제로 이어질 뻔한 일을 경험하면서 도자기와 불이라는 낭만적 관계가 아닌 현대사회는 도자기와 전기의 관계라는 두려운 관계가 더 부각되며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은 칠레에서 잠깐 경험했던 소풍 같았던 불과 함께 한 어느 오후였다.


칠레에 머무를 때 SNS를 통해 한 광고를 보았다. 칠레대학교 예술학부 도예과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이었는데 두 번의 토요일에 진행되는 워크숍이었다. 한 번은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나머지 한 번은 직접 땅에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고 했다.

첫 토요일이 이미 지나간 시점이라 메일로 두 번째 시간에만 참여가 가능한지 문의를 해 허락을 받았다. 토요일 점심 나절, 워크숍이 있는 칠레대학교 예술학부 캠퍼스의 한 공터로 가니 이미 조금 일찍 모인 사람들은 각각 무언가를 분주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터 한쪽에 있는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손질하는 사람, 점심을 위해 불을 피우는 사람, 워크숍을 진행하는 도예과 학생들은 공터 한편에 이미 지름 1m 정도의 구덩이를 준비하고, 흙 작품을 구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 음악가, 동네 주민, 대학생 등 신분도 다양한 사람들은 ‘도자기 만들기’를 위해 모였다기보다는 토요일 낮의 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소풍 나온 사람들 같았다. 그 편안함이 좋았다. 간단한 구덩이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한주 동안 잘 마른 흙 작품들을 차곡차곡 구덩이에 놓았다. 중간에 도예과 교수님처럼 보이는 분이 와서 이런저런 조언도 해주며 마치 놀 듯이, 공부하듯이 진행되는 시간이었다. 밑불을 지피고 거의 다섯 시간의 불놀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불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잠시 마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자연스러웠다. 무언가 목표를 가진 도예 워크숍이 아닌 흙과 불이 함께하는 소풍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간이면 도예의 낭만성이 공유되는 시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흙과 불의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워크숍을 해보고 싶다고 종종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하고 했는데 불을 피울 수 있는 공터가 필요했고 충분한 장작이며 여유로운 시간들 모든 것이 서울이라는 공간에서는 힘든 것이었다. 그런 중에 강원도와 강화도에서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완벽하게 그 날 같진 않았지만 1박 2일 워크숍으로 미리 만들어 놓은 흙작품을 직접 구덩이를 만들어 구워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불가에 앉아 흙을 구우며 마주 앉는 시간은 충분히 평화로웠다. 그렇게 불 앞의 시간을 지나고 다음날 선물처럼 흙속에서 발견되는 구워진 흙을 만나는 즐거움 또한 컸다.


여전히 나는 서울의 작은 작업실에서 전기 가마의 스위치를 올리고 버튼을 누른다. 기회가 된다면 흙과 불이 함께 노니는 축제로의 초대를 조금 더 자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농담처럼 진담처럼 이야기한다. 언젠가 작은 땅에 직접 가마를 만들고 그곳에 오는 사람들과 불을 지피며 놀아야지. 흙과 불의 소풍이 있는 공간. 아마도 나에게는 다음 정거장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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