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따뜻한 위로
어릴 때는 별로였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좋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갖게 되는 물건이나 음식 같은 것들. 나의 그 수많은 애틋한 것들 중 하나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바로 미역국입니다.
솔직히 어린 시절,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소위 엄마집에 살던 때에는 미역국이 별로였습니다. 어쩌면 싫어하는 편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미역국을 불릴 때 나는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 미끄덩 거리는 식감의 미역 줄기, 묘하게 초록색도 회색도 아닌 색.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닌 엄마의 음식임에도 딱히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미역국이 좋아진 것은 결혼을 해서 더 이상 집밥이 누가 해주는 음식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음식이 된 이후입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헛헛하거나, 몸이 으슬할 때는 미역국이 생각이 났습니다. 뜨끈하게 끓인 고소한 미역국에 밥 한술 말아서 먹으면 조금 힘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왜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미역국에 그런 애틋한 기분이 들까 의아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합니다. 집에서 쉽게 먹던 음식 중에 의외로 밖에서 사 먹기 어려운 것이 미역국이더란 말입니다. 미역국이란 자고로 뜨끈하게 한 대접 넉넉히 먹어야 하는데, 집 밖을 나오면 백반집에서 작은 그릇에 맛보기처럼 나와 더 달라는 말을 하려면 묘하게 눈치를 봐야 하고 메인 메뉴로 판매하는 식당도 적을뿐더러 애써 찾으면 소고기나 전복 같은 화려한 건더기가 더해져 가격이 만만치 않아 지는 음식이 되어버립니다. 집에서는 쉽던 음식이었는데 밖에 나오니 이렇게 낯설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역국이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생일의 상징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일의 아침을 여는 축하의 음식이자, 그 축하를 위해 누군가가 일찍부터 정성 들여 끓여주는 국. 다른 사람이 정성과 사랑과 축하의 마음을 담아 끓여주는 음식. 그래서 아프고 서러울 때 생각나는가 봅니다. 누군가의 위로가 그립고, 나도 의지할 구석이 있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채우듯 빈 속을 뜨끈하게 채우고 나면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몸이 커지고, 얼굴이 더 이상 앳되지 않은 어른이 된 이후에 오히려 커진 몸만큼 더 그런 따뜻한 위로나 정성을 바라는 마음의 공간도 커져서 그런지 그런 쪽으로 허기가 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빠르게 그 허기를 채우는 방법은 미역국을 끓이는 겁니다. 뜨끈하고 고소한 향에, 정성껏 푹 끓인 미역국에 흰쌀밥을 말아 크게 한 입 채우는 것.
그래서 나에게 미역국을 끓이는 일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끓이는 미역국은 결국 정성과 사랑과 위로와 축하 같은 애틋한 것들을 전하는 일이니까요. 그 누군가가 심지어 나 자신일 때는 더욱 애틋해집니다.
봄을 맞아 남편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오늘 저녁은 따뜻한 미역국을 전해야겠습니다. 감기가 빼앗아간 기운을 불어넣어 줄 내 정성과 사랑을 가득 넣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