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계절을 격정적으로 알아차리는 환절기 알러지때문에 3보1재채기의 아찔함을 감수하면서도 산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바로 봄 입니다.
선선한데 포근한 공기,
눅눅하지도 퍼석하지도 않은 바닥,
깜깜한 밤하늘에 누가 빛을 뭉쳐 쏟아놓은듯
머리 위로 흐드러지는 벚꽃들,
북적이지만 소란하지 않은
뭔가 들떠있는 사람들의 분위기까지.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세상천지에 홀릴만한 것들이 만발하는 계절입니다.
봄 밤 산책은 가라앉은 기분도 붕붕 뜨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니 새삼 나도 그 예쁜 것들 사이에 살아있다는 것이, 마치 나도 예쁜 무엇이 된 듯 설렙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날아가는 꽃잎에 시선을 뺏기며 걷는 동안 마음에 얹혔던 것들도 탁 놓아지는 기분도 들구요. 세상 가벼운 꽃잎을 운 좋게 잡으면 묵직한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봄 밤 산책의 묘미는 꽃의 두 얼굴이 아닐까싶습니다. 낮에는 그저 해사하니 볕아래에서 얌전하던 벚꽃은, 밤이 되면 낮에 모은 빛을 온몸으로 뿜어내듯 요사스러워집니다. 박완서 작가의 <저물녘의 황홀>에서 묘사하듯이 미친 듯이 피어났다는 말이 딱 어울리도록.
엷은 꽃구름은 불과 일주일만에
활짝 피어났다.
어찌나 미친 듯이 피어나던지
박완서, <저물녘의 황홀> 中
이런 분위기에 취해 얼마고 걷다보면 마주치는 야장에서 술 한 잔 가볍게 걸치곤 하는데, 그럼 내가 술에 취하는 건지 폭닥한 공기에 취하는 건지, 요사스런 꽃에 취하는 건지 알 수 없어집니다.
그래서 위험하지만 길어야 며칠이기에 참을 수 없는, 봄 밤 산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