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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와 무관하게

by 오늘 Mar 21. 2025

'결과와 무관하게'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말 그대로 긴 시간 몰입할 여유 없이 결과만 봐도 모자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이게 웬 말인가 싶겠지만 누군가 '결과와 무관하게'라고 말문을 연다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해질 만큼 좋아합니다.


지독한 과정중시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내가 특출 나게 모범적이거나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도에서 벗어나 '과정이야 어쨌건'의 태도로 이득이나 성과를 취하기 위해 하는 행위를 아주 싫어합니다. 가끔씩 마주치는, 그렇게 해서 빠르고, 큰 성과를 냈다는 이유로 그저 열심히,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과정을 우습고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저 해야 하기에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진심을 다하는 마음이, 빠르게 도달하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서 뭐라도 상관없이 결과만을 보는 관점에 가려져 초라해지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진심은 대부분 두려움과 함께 나타납니다. 

좋은데 거절당할까 봐, 하고 싶은데 잘 못 할까 봐,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 봐. 두려움을 동반한 진심은 쪼그라든 초라한 모습이 되기 일쑤이고 세련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두려움과 함께 걷는 과정의 길은 두려움의 크기보다 몇 배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요. 이 와중에 더 가관인 것은 아무리 열심히 용기를 냈다고 한들, 모든 결과가 좋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간절한 모두의 최선을 다한 과정의 결과가 모두 화려하다면 오늘 밤 마음이 씁쓸한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겠지만,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고백하건대 불행히도 실패의 기억에 베개를 적신 시끄러운 밤이 손에 꼽을 수 없이 많은 제가 증인입니다.


그래서 '결과와 무관하게'라는 말은 뒤에 따르는 말의 온도가 따뜻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과정에 대해 위로해 주는 도입부 같아서 좋아합니다. 나의 결과가 과정의 포부와는 다르게 실패했다는 진실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마는데, 성공은 축하와 포상과 칭찬으로 가득 찬 타인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실패는 스스로의 매서운 질책과 자괴감의 목소리가 큰 법입니다. 나 자신의 차가운 비평을 녹이는 그만큼의 따뜻한 온도의 말.


'결과와 무관하게'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명언 중에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순간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연처럼 찾아오는 운이 있어서 결과가 화려하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사실은 그 운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 운이 기회임을 알아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과정을 잘 걷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 없는 성과는 없으니까요. 하다 못해 행운의 대표 키워드 로또 당첨마저도, 로또를 사는 과정이 없다면 당첨이라는 결과도 없답니다. 


그러니 여러분, '결론만 얘기해서'라는 말도 명료하고 좋지만 가끔은 '결과와 무관하게' 스스로의 과거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끔은 다른 누구보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에게 받는 위로가 가장 위안이 되니까요. 그리고 그 유일한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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