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의 확신, 2% 부족할 때.
머물 것인가, 떠날 것인가.
몇 번의 밤을 고민으로 채워내고 노트에 가득 써내려 눈으로 직접 내 현실과 마음을 확인한 뒤, 떠나야 한다는 98%의 확신은 있었지만, 2%의 불안감까지 떨쳐지진 않았다.
"날 채워줘, 2% 부족할 때"라는 흘러버린 세월 속의 TV CF의 카피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나 역시 오래된 기성세대이기 때문이겠지. 맞다, 나 기성세대지. 그만큼 무거워진 내 연차와 나이인데 이직이 아니라 퇴직을 해도 괜찮을까?
생각이라는 건 하면 할수록 꼬리를 물고,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원점이었다.
무한한 돌림노래에 갇힌 기분이었다.
뭘까, 이 불안감의 진짜 정체는.
거듭된 고민에도 명쾌하지 않은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 잠이 끼어들 틈 없이 또렷한 깊은 밤.
거실에 혼자 앉아 불안감을 다독이려 괜히 가방정리를 하는데 작년에 만들고 다 쓰지 못한 명함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 그래, 이 불안감이 태초에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겠다. 명함! 명함이다.
스무 살, 나는 갑자기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기분이 되었었다.
OOO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 명확히 소속이 있었던 시절을 지나, 처음 세상에서 나의 능력을 점수 매겨 있을 자리를 경쟁하는 수능에 실패하고 재수생이 되었다.
그해 3월 1일, 처음 재수학원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하필 마주친 동창은 OOO대학교 OO학번 새내기로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그 순간 문득 나는 나를 소개할 때 포장할 수 있는 소재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이대로 몇 년이고 무소속이 되면 어떡하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 이후로 대학시절을 보내고, 회사를 다니면서 부단히 어떤 것이든 소속을 만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여러 번의 대외활동, 2010년대 이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를 가지고 왔던 꽤나 핫했던 스타트업 회사의 MD, 누구나 들으면 알 법한 대기업 유통사의 바이어, 그리고 그런 회사의 영업전략 부서의 과장. 내가 나를 구태여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아도 대신 나를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나의 소속. 나의 명함들이여.
소속이 없어지면 앞으로 나는 나를 무엇으로 소개해야 하나. 나는 뭘 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90mm*50mm 사이즈의 작은 종이 한 장이 이제까지 쌓아온 시간의 증명인 것 같았다. 그렇지, 나는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돈이 아니라 인정이 중요했던 사람이지. 모순적이지만 사실이었다. 이 명함을 빼고 나를 소개할 때, 사람들은 나를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곧 죽어도 초라한 건 못 견디는 사람인데...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혼자 고민하는 건 한계가 있다. 머리의 면적은 깨나 좁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결국 자기들끼리 꼬이게 된다. 나는 퇴직을-특히나 희망퇴직은 더더욱- 경험해보지 않았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은 가설만 있을 뿐, 정답은 없으니까. 레퍼런스가 필요했다. 비슷한 경험을 먼저 해 본 지인들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회사 그만두고 그냥 쉬면, 굶어 죽어?! 그냥 쉬면 나 망해?"
타의든, 자의든 예기치 못하게 퇴직을 하고 당분간 공백기를 가졌던 지인들은 짠 듯이 같은 대답을 했다.
"그만두게? 부러워! 왜 굶어 죽어! 정말 좋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돼."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괜찮아!"
나보다 먼저 이 상황을 겪어본 이들의 경험담은 용기를 주었다.
그래, 망하는 게 아니라 쉬는 거야.
나는 망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긴 통화의 끝에 친구의 한 마디에 모든 마음이 선명히 정리되었다.
그리고 넌, 뭘 해도 잘할 거야. 너잖아!
그래, 난 나니까. 나의 약 14년 세월은 고작 90mm*50mm의 빳빳한 종이쪼가리로 증명될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인 시간과 경험은 여실히 쌓여 스스로를 증명해 왔다. 나의 이름, 그리고 나의 시간들. 종이 하나 없어진다고 사라질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그 한 마디로 깨달았다.
그래. 이번 퇴직은 희망이다. 내가 선택하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되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