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있기 싫어서 멈춰갑니다.
불안의 원천을 마주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엇'인가는 나중의 문제이고 '나'라는 주어가 중요한 것임을 되새기는 과정이었다.
마침 한창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던 시기였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추워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목, 허리의 뻐근한 통증이 코어(core)근육이 약해서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솔직히 코어근육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런 생각은 들었다.
마음에도 '코어(core)'가 필요하겠다.
내가 나라는 근본만 단단하게 유지하면 다른 어떤 내가 되어도, 또는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희망퇴직 신청마감 주간의 월요일이 밝았다. 취업하고 나서 이렇게 개운한 월요일을 맞이해 본 적이 있었던가. 출근과 동시에 팀장님에게 면담신청을 하고 팀원들에게 나의 결정을 공유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일을 이 사람들에게 버리고 도망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다행히도 팀원들은 나의 선택에 아쉽고 서운해 했지만,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응원해 주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나마 버틴 거겠지.
팀장님은 퇴직면담 끝에 앞으로도 회사를 향한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서툰 응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삼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사도, 나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응원이 필요했다.
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충격적이다 → 응원한다 → 부럽다" 의 3단계를 거쳤다.
나는 회사에서 잡초같은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 떨어지든 어떻게든 해냈다. 책임감이 이렇게 나한테 독이 될줄은 몰랐다. 꿈에서는 밤새 엑셀 수식을 걸고, PPT를 만들어 내곤 했다. 스마트 워치는 나의 깊은 수면은 10분 미만이며, 수면점수가 아주 형편없다고 기록했다. 다른 사람에게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듣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해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의외네요, 악착같이 아등바등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길래 그런 줄 몰랐는데' 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등바등'.
원래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내가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약점.
그래서 아마 누군가에게는 나의 퇴사선언이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메신저로 나에게 또는 내 지인들에게 쏟아지는 남편과는 상의한 거냐, 위로금은 얼마를 받고, 어디 갈거냐고, 누울 자리는 보고 다리 뻗으시는 거지요 등등 호기심 가득한 질문들-네, 있죠. 누울 자리, 우리 집 침대!-이 꽤 많았지만 그럭저럭 날세우지 않고 대답했다. 다들 마음 속에 고민이 많아서 그렇겠지, 묘한 쾌감도 들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해서 좋았다', '어디서든 잘 할 것이다' 라고 대가없이 듣고 싶었던 말들을 해준 덕에 나의 지난 직장생활이 그래도 틀리지 않았다-비록 조금 아등바등 했을지언정-는 위로와 안심이 되었다.
퇴직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고, 신청 후 퇴사까지의 날들은 여느때보다 빨리 갔다.
마지막 날까지 내일도 나올 사람처럼 티나지 않게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면서 마음정리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냥 건전지를 갈아 끼듯이 내일부터 나는 이곳에서 없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래도 서운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거였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했다지만, 온전히 내 것은 없었다.
당연하다.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회사원이었으니까.
이커머스 시장에 표류하던 나는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모르는 섬에서 혼자 서있다.
계획은 없다.
표현이 꽤나 역설적이지만, 고여있기 싫어서 멈췄다. 이제 어디로 흐를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다.
우선은,
안녕하세요 백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