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빛과 실>
어린 나는 감수성이 꽤나 예민한 아이였다.
오죽했으면 초등학생 때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국적도, 시대도 달랐던 안네 프랑크와 감정선이 동기화될 정도였으니까. 언제라도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갈망, 그 와중에도 느껴지는 삶의 감정들에 대해 죄책감까지 느끼며 며칠 밤을 내가 안네라도 된 냥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으로 뒤척였던 기억이 있다.
어린 몸뚱이에 담기엔 참으로 버거운 감수성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다른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공감하고 고뇌하게 만든 것.
그건 바로, ‘글쓰기’였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렇게나 구체적인 깨달음은 아니었겠으나, 어렴풋이 그 힘에 대해 느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쓰고 싶어서 썼다. 시간이 지나 연습장 몇 권에 시와 동화, 소설 같은 것들을 채워내자 어느 순간 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막상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나면 발가벗겨진 듯 작아지고 쑥스러워졌다. 평가받는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종국에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사춘기와 글태기의 아찔한 콜라보였다.
그렇게 별것도 아닌 이유로 글 쓰는 일과는 자연스레 멀어져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다시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한강 작가의 『빛과 실』이다.
이 책에는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이 수록되어 있다.
책 제목인 ‘빛과 실’은 작가가 어린 시절 썼던 사랑에 대한 시에서 비롯되었다.
사랑의 위치와 역할을, 어린이치고는 너무나 또렷한 통찰로 꿰뚫고 있다.
이 책의 작가소개는 아주 매혹적이다.
"한강—글을 쓴다"로 시작하는 소개,
서울을 가로지르는 강 이름으로서의 '한강'에 묻히지 않는 강렬한 또 하나의 고유명사. 그 아래 바로 화려한 수상경력이나 작품들에 앞서 선두로 적힌 '글을 쓴다'라는 짧고도 확고한 문장이라니.
이토록 간결하고 인상 깊은 작가 소개가 또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
사실 이 전까지 한강 작가의 작품은 '소년이 온다'밖에 읽지 못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중 가장 두께가 얇기에 부담 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막상 읽고 나니 두께에 비해 알 수 없는 부담감이 엄습해 선뜻 다른 작품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단숨에 읽어내렸으면서,
다른 작품은 못 읽겠다는 그 이유가 뭔지 나 스스로도 도무지 잘 알지 못했다.
이 책의 '가장 어두운 밤에도'를 읽기 전까지는.
작가는 어린 시절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비가 오는 하원길의 기억으로 이 장을 시작한다. 우산이 없어 건물 처마 아래 모여 내리는 비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봤던 그날의 광경을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라고 기억한다.
수많은 일인칭이라.
그렇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나'이다. 각자의 세계와 경험과 역사와 감정이 있는. 그 당연하고도 생소한 사실이라니. 한강 작가는 문학을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한강작가의 작품을 읽기가 두렵다.
이 사람은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것에게 일인칭의 삶을 읽어낸다. <소년이 온다>의 수많은 개인들의 삶이 한 사람이 썼다기엔 생생하게도 다양했던 기억이 있다. 때론 구덩이 속의 누군가가 되어보기 위해 책상 아래 웅크려 있던, 눈 오는 날 산속을 헤매는 사람이 되기 위해 눈이 오면 택시를 타고 산으로 달리던, 깜깜한 어둠 속의 사람이 되기 위해 보일러 전원마저 가리면서 각자의 일인칭의 순간을 내면의 무언가로 잇고 꿰어 써 내려간 사람의 글이라서 무서웠던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모두의 인생이 소란하게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작은 정원을 채운 꽃과 나무들에 대해 기록한 식물일기도 따뜻하다.
북향이라 포집할 것이 없을 때까지 위치를 바꿔가며 거울로 반사시킨 남쪽의 빛의 온도만큼.
당연하다, 꽃과 나무도 생명이 있으니까.
그마저도 글로 꿰어내는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쓴다는 것은 이토록 무섭고 따뜻한 일이구나 싶다.
글은 손으로 쓰지만,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기억과 경험과 감정들을 조금씩 잘라내어서 글이라는 것으로 서로 잇고 꿰매는 일이다 싶다. 나는 아직 다른 이의 일인칭의 몫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라는 사람의 일인칭의 관점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2주간 쓰지 않고 미뤄두었던 일기를 오늘 다시 쓰려고 한다.
매일 달라지는 하루에 대해 기록하고 모아보면 먼 훗날 지금의 내가 과거가 되었을 때 그때를 완성한 지금의 순간을 되살려 볼 수 있겠지.
오늘, 나도 글을 쓴다.
그 날카롭고 따뜻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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