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속 ‘입력 중’ 시대에 우편으로 오간 위로

황선우, 김혼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by 오늘

작년 여름, 퇴직을 선언하고 나서 격려와 응원이 담긴 선물들을 많이 받았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책이었다.


아등바등 버텨내고 애쓴 잡초같이 불태운 나의 사회생활을 지켜본 지인들이 고르고 고른 책들.
그간 나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와 걱정을 담아 고르느라 얼마나 고민했을지
제목에서부터 보여 코 끝이 찡해지는 선물이었다.


이 책 역시 그중 하나이다.
나의 십수 년을 위로하고 칭찬해 주면서도 앞날을 응원하는 선물 같은 책.


황선우, 김혼비 작가의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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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런 류의 제목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래라저래라 하면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어하는 희한한 고집을 타고난지라,
마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의 '너는 죽는다'라는 고지 같은 이 제목이 왠지 썩 내키지 않았다.


누구는 최선을 다하라고 하고,
누구는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고 하고.

아 어쩌란 말이냐- 하는 심정으로 표지를 열어보았다.


이 책은 황선우 작가와 김혼비 작가의
약 1년 간 주고받은 서간문을 엮은 책이다.


한 번 더 솔직하자면, 나는 이런 류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미 친한 두 사람 사이에 이제야 끼어들어
어색하지 않게 말 걸 타이밍을 재야 하는 숙명을 가진 제3의 인물이 된 것 같아서.

유대 없는 관계의 두 사람이 둘만 아는 얘기를 할 때
눈치껏 전후의 상황을 캐치해야 하는 후발자가 된 듯한 소외감이 들기 때문이다.

김혼비 작가가 축구를 배웠는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
황선우 작가가 함께 살고 있는 김하나 작가와는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
나는 모르는 사이인데 두 사람은 이미 자기소개 이상의 유대를 맺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몇 줄 읽어 내려가니 두 사람 간에 긴밀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거나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닌 듯 싶어
내가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감정이 위안이 되곤 한다.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하는 두 작가의 일상에서
내 삶 언젠가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위로를 받곤 했다.


번아웃을 경험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던 김혼비 작가의 어느 날에서,
회사를 다니느라 20년간 미뤄두었던 수영을
3년이나 하다가도 어느 날 어느 사건 하나 때문에 그만두는 황선우 작가의 마지막 한 방울에서,
절기를 챙기는 자기만의 의식으로 45초 만에 영원히 기억될 장면을 만드는
김혼비 작가의 어느 경칩에서.


읽다 보니 나도 제법 그 둘을 알게 된 것 같아
그냥 친한 친구끼리 우정일기를 쓰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읽어 내렸다.

딱 마음이 혼란하고 복잡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여전히 지나치게 비장한 제목은 조금 괴리감이 든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니.

이 제목은 황선우 작가의 편지에서 이옥선 작가가 ⟪빅토리 노트⟫에서 인용해 경고한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문장을 소개한 부분에서 따온 것이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는 지나친 열심과 부지런을 금지하고 대신 한 템포씩 느리게 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이 대목에서 황선우 작가는

'나보다 한참 오래된 선배가 조금 느긋해도 된다고 얘기해 주는 게 참 마음이 놓여요.'

-라고 얘기한다.


결국 위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게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이토록 소소하고 잔잔한 서간문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너무 비장하다 싶다.


꼭... 최선을 다하면 죽어야 하나요?

다 잘 살자고 하는 건데 그냥 열심히 살 수도 있잖아요, 각자 생긴 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닐까요.


잘 사는 것,
가장 어려운 일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다하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그냥 각자의 삶을 잘 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은 조금 내용과는 다른 결을 갖고 있긴 하지만....
(작가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걸요?)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의외로 처음에는 솔직히 불편했던 서간체의 문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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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써본 적이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의 일상을 전하며
돌아오는 답장을 기다리는 일.

지금에야 보낸 메신저 옆의 지워지는 숫자나
상대방의 입력창에 '입력 중'이라고 반짝이는 화면을 보면서

답장을 기다리는 인내의 한계도 하염없이 줄어든 듯한데,

몇 날 며칠이고 오가며 우편함을 뒤져가면서 기다렸던
손편지의 묘미를 느낀 지 오래다.


그렇게 기다려야 받는 답장이니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 가끔은 추신이 본문보다 더 길도록 종이 가득히 쓰던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이 기분을 빌어
오래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손 편지를 하나 써볼까 싶다.

보낼 수 있을지는 그때의 용기에 맡겨보기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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