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라이프콘텐츠를 소개합니다 ⑦
생각해보니, 1년에 12번이다. 새 달을 맞이하는 리추얼의 횟수. 매 달 1일은 나 자신과 나의 삶에 대해 골똘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노트를 펴고 책상 앞에 앉아서.
시행착오가 있었다. 당연한 듯, 한 동안은 매 달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고 믿었으나 지키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한 달 후의 나는 그 사실을 깨달으며 작은 실망감을 느꼈다.
바꿨다. 목표를 생각하지 않기로. 대신 한 달간, 어떤 내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바꿔 말해, 어떤 태도로 살 것인지를 그려보았다. 그러자 모든 게 쉬워졌다.
2022년 11월 1일, 그러니까 지난주 화요일,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펴고 이번 달의 '되고 싶은 나'를 떠올렸다. '숨지 않는 내가 되자!' 이번 달의 태도는 단숨에 정해졌다. <브런치북>을 출간하고,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싶었기에.
2021년 6월~2021년 12월
마무리를 잘하는 내가 되자!
2022년 1월~7월
다정한 내가 되자!
2022년 8월~2022년 9월
'다정하게'
안달복달하지 않는 내가 되자!
2022년 10월
'춤추듯 우아하게'
사뿐사뿐 가볍게 사는 내가 되자!
2022년 11월
숨지 않는 내가 되자!
2021년 6월의 태도는 '마무리를 잘하는 내가 되자!'였다. 시작은 잘해놓고 끝에 가서 꼭 흐지부지해지는 나를 바꾸고 싶었기에.
매월 첫날에 어떤 태도로 살지를 정해두었더니 일상의 매 순간, ‘되고 싶은 나’를 의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외출 후 옷 정리를 하지 않아 옷 무덤을 만들기 일쑤였는데, 마무리를 잘하고 싶어서 바로바로 옷 정리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놀라웠다. 아마도 '외출 후 돌아와서 옷 정리하기'가 목표였다면 지켜지지 않았을 텐데, 신기했다.
모임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람들과도 아름답게 작별했다. 모임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밝혔고, 그동안 즐거웠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그냥 사라져도 될 일이었지만, 과거의 나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무리를 잘하는 나'에 대한 유쾌한 경험이 점점 쌓여갔다. 2021년 6월의 나를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때문에 6개월 간 같은 삶의 태도를 유지했다. 덕분에 이제는 시작과 끝을 둘 다 염두에 둘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안의 불안과 걱정과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질 줄은. 어떻게 된 연유일까.
한 달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지난달의 나와 나의 생활을 복기하게 된다. 기록을 살피다 보면 연결된 기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걱정했던 일, 불안을 느꼈던 일,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던 일이 발견된다. 그다음, 이 질문에 집중한다. “이 <근심 3총사>를 내 인생에서 사라지게 하려면?”
2022년 7월은 어떤 이유로 수시로 조바심이 났다. 벗어나고 싶었다. 달라지고 싶었다. 특히 한 달의 첫 시작 날은 더 새로워지고 싶기에. 하여, 8월에는 ‘안달복달하지 않는 내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안달복달'을 졸업하는 데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8월엔 헤맸지만, 9월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중 안달복달의 상태나 안달복달하는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각종 노하우가 쌓였다.
‘안달복달’과 비슷한 불안과 걱정이 찾아오면 그간의 경험치를 바탕으로 재빠르게 대응한다. 못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저절로 평화로운 삶이 지속된다. 참으로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했다'와 '안 했다'의 사이에서 평가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한 달간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되짚어보면 된다. 주관적인 느낌의 문제이기에 정답이 없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시간을 더 들이고 싶다면 원하는 기간만큼 연장하여 ‘되고 싶은 나’에 집중하면 끝!
1년 넘게 이 리추얼을 지속하면서 흥미로운 구석을 찾았다. 굳이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싶은 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것! 특히 결정적인 순간, 1일에 썼던 그 단어와 문장이 불쑥 떠올라 실행을 부추겼다. 마법 같다. 최면 같기도.
뇌과학에서 말하는 ‘시각화’ 훈련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시각화’가 반복될 경우, 뇌의 신경망이 변하고, 목적의식과 동기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한 달 동안 ‘되고 싶은 나’를 최소한 30번은 떠올렸을 테니 의도치 않게 시각화 연습이 됐던 셈이 아닐까.
2022년의 첫 태도는 ‘다정한 내가 되자!’였다. 원래도 화났냐는 오해를 종종 받던 터였는데, 여기에 사회성이 떨어진 요양인의 까칠하고 날 선 마음까지 더해지니 말과 행동이 뾰족해졌음을 느꼈다. 의도와 달리 인간 송곳, 인간 얼음처럼 굴었다. ‘다정하게’를 의식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내뱉을 말과 행동을 한 번 더 고민했다. 물론 나 자신에게도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점점 인간 난로, 인간 보일러가 되어감을 느꼈다.
배우가 특정 배역을 맡으면 그 배역 속에 몰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감정도 그 사람처럼 느낀다.
비슷한 일 같다. 30일 간 ‘되고 싶은 나’를 인식하면서 나는 달라진다. 내가 맞지만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어본다. 좋으면 계속하고, 싫으면 관두면 된다는 점에서 배역을 맡는 것보다 자유롭다. 딱히 손해 볼 일도 없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밀도 있는 자기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것일 테고,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나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일 테다.
매월 1일, ‘되고 싶은 나’를 떠올리면서, 왜 숨고 싶은지, 왜 마무리를 못하는지, 왜 다정하지 않은지, 왜 안달복달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애써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던 나의 감정을 찬찬히 살폈다. 내가 원하는 구체적인 욕망과 욕구를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켜주려 했다.
책상 앞에 앉는 리추얼은 매 달 새롭게, 마음을 보살피는 시간이자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해서, 늘 다가올 새 달을 기다린다. 나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