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그대만이 내 엄마

by 토닥토닥 oz

영자 씨, 나의 엄마!


꽃, 약, 시집, 먹거리.
그리고 아픔, 후회, 미안함.


언제나 ‘영자 씨’라는 이름과 함께 엉켜 떠오르는 내 마음속 기억들


맨날 바라기만 하고, 정작 아무것도 해준 게 없네.

정말 모녀 여행도 한번 못 가고

온천도 한번 못 가고

조카 데리고 어학연수가 아니라, 엄마를 모시고 남들 한 번씩은 한다는 효도여행을 갔어야 했는데...

그냥 아빠엄마랑 함께라는 게 싫어서, 너무 다른 두 사람을 맞춰드리는 게 지쳐서,

싫은데 애써야 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피해 다녔어.


절친 제이와 태국 여행 다녀왔을 때,

내 이야기를 들으며 나물을 다듬던 영자 씨의 표정이 왜 그리 어두웠는지,

그 나이가 되었으면서도 어쩌면 그리 몰랐을까


"우리나라도 좋은 곳이 참 많던데... "


TV 속 어느 여행지를 보면서 그리 말씀하셨는데,

그곳을 가고 싶다는 바람이셨겠지.

하지만 나는 20년째 장롱면허 보유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시작도 어려웠고

사실 그보다, 우린 모두가 늘 바빴어.

나부터 그랬으니 누구 탓도 할 순 없겠지.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 말에 '또 왜 이래' 하고 핀잔이나 주었던 나는,

정작 같이 웃으며 벚꽃 구경 한 번, 음악회 한 번 함께해 드리지 못했네.

이제 와서 아무 소용도 없는 생각들을 날마다 반복하며 한숨 쉬는 내가 참 미워.


정말 몰라서였을까.
사랑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너무 바빠서였을까.


나는 너무 바빠서 그랬다고… 끝까지 우기고 싶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었을 텐데.

좀 더 고민하며 찾았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에 또 후회를 해.


지금 내가 방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힘들다고 다 놓아버린 그 순간이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어.

하지만 이제는 뒤로 걷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나아갈 거야.

이미 훌쩍 먼 인생을 살았지만, 그래도 남은 인생 소중하게 지킬 거야.

그때처럼 포기하지 않고, 그런 후회 다시없도록, 남은 하루하루를 애틋하게 살아볼 거야.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떤 이가

나처럼 갈등하고 있다면, 힘들어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어.

가족이든, 연인이든, 일이든

정말 미칠 것처럼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절대 스스로 포기하지 말라고.


그땐 조금 돌아가도 된다고.

잠깐 쉬어가도 된다고.

멈춰 선 순간에 오히려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내 첫 브런치 북, <영자 씨, 나는 조금 천천히 갈게>을 쓰면서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건네고 싶었던 것 같아.






영자 씨, 편지 30통이 완성되었어요.

브런치 북 한 권에는 30개의 이야기만 담을 수 있어요.

더 긴 얘기는 새로이 시작해야 한답니다.

고민이 되었어요.

하고 싶은 얘기는 아직 너무 많지만...

아니 사실 이제 시작이지만...

일단은 접어두도록 하자고...

고민 끝에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솜씨가 부족해서일까요?

어디쯤에서부터 인지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심상치 않게 자라나는 욕심.
자꾸 더 잘 꾸며보려는 마음.
어느 순간, 진실 같은 거짓으로 영자 씨를 덮어버릴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진심을 담으려 애썼지만, 그래도 100%는 아닐 거예요.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묻어두고 싶은 우리 둘만의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서툴고 부족하고 늦은 마음이지만, 그것들을 주섬주섬 모아 오늘 편지에 담아봅니다.


영자 씨,

나는 조금 천천히 갈래요.

하지만,

당신을 잃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 있지 않고,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갈게요.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 순간 - 그때만큼은 행복한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 있을게요.


영자 씨,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 엄마로 오신 당신.

보고 싶어요.


가슴에 또 가득 차오르는 말이 생기면, 그때 다시 편지를 쓰겠습니다.






P.S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은 브런치 글을 읽었습니다.

여러 작가님들의 글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어요.


부모님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듯한 제 글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1인 다역을 해내며 각자의 삶을 굳건히 살아내는 많은 분들이 참 대단하고,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분들과 이 브런치 안에서 같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용히, 그리고 벅차게 뿌듯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시작되었다'는 안도감,

그 소중한 느낌이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해 준 브런치북과

여기 있는 모든 작가님들께

이렇게라도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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