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영자 씨

막내딸 쪼야의 편지

by 토닥토닥 oz

영자 씨, 오늘은 특별한 편지 한 통을 전하려 해.

내게 ‘영자 씨 이야기를 써보라’고 처음 말해주었던 사람.
묵묵히 내 글을 읽으며 응원해 주는 사람.
내 곁에서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
그리고 나와 함께 영자 씨를 마음 깊이 묻은 사람.

당신의 사랑하는 둘째 딸,

내 동생 쪼야의 편지야.






"내가 가거든, 바람결에 날려주렴.

경치 좋은 곳에서 좋은 소리, 좋은 공기,

좋은 느낌 만끽하며 훨~훨~ 날아다니련다.


지치면,

예쁜 꽃, 맑은 시냇물...

어디든 사뿐히 내려앉아 쉬다가,

때가 되면 예쁜 여자로 다시 태어나

다음 생은 사랑 듬뿍 받고 살아보련다."


유언처럼 남았던 영자 씨의 바람을 나는 단 하나도 지켜주지 못했어요.

엄마를 찾아야 할 때 갈 곳이 없을 우리 자매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울까 봐,

결국 우리의 욕심대로 엄마를 가까운 납골당에 모셨어요.

기쁘고 행복한 날보다 서럽고 힘든 날에만 찾아가는, 그런 못난 자식으로 남아버렸네요.

영자 씨, 미안해요.





“아... 아프다.”

요즘도 코로나, 독감이 해마다 명절마냥 찾아와 괴롭히네요.

아플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요.

고3이던 그 시절, 아프다고 푸념하던 영자 씨의 목소리가.


“아파서 사흘이 돼 가도록 죽 한 그릇 끓여주는 이가 없네.

아이고... 더러운 팔자!”


그때 나는, 며칠째 도시락을 안 싸준 엄마에게만 ‘꽁’ 해서


“엄마는 딸이 고3인 것도 몰라!!! 왜 맨날 아파! 왜 나한테 그래!”


“...............”


엄마는 말없이 계셨고, 나는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어요.


그렇게 학교에 간 나는, 금세 아무 일도 없던 듯 웃으며 지냈어요.

"딩동댕동"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무실에서 나를 찾았어요.


“경비실로 가봐. 어머님께서 도시락을 맡기고 가셨단다.”


배가 고팠던 나는 경비실로 힘껏 달려갔어요.

보온도시락 두 개가 작은 메모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막내딸!'


영자 씨는 종종, 아무 종이 든 찢어서 작은 손 편지를 써주시곤 하셨는데, 늘 이렇게 시작했어요.


'아침에 엄마가 골내서 미안해.

고3인데 엄마가 신경 못 써줘도 스스로 잘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대견하다, 우리 딸.

끝까지 힘내서 좋은 결과 있길 바래.


우리 막내딸이 좋아하는 빨간 고추장 제육볶음이랑 김치볶음.

맛있게 먹고 기분 풀어~.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그날 나는, 그저 따뜻한 도시락에 마음이 녹아내렸어요.

엄마를 용서하겠다고만 생각했죠.






이만큼 세월이 흐르고,

나도 두 아이를 키워놓고 보니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오늘처럼 몸이 아픈 날이면, 그때의 영자 씨가 떠올라 온몸이 더 욱신거립니다.


지금의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았던 그 시절의 영자 씨,
자기 몸 하나 돌볼 여유도 없었을 텐데.
그 아픈 몸으로 도시락을 싸고, 편지까지 써 내려간 그 마음이 너무 아려서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짝꿍이 있는 나도, 이렇게 서럽고 귀찮고 힘든데,

늘 누군가를 챙겨야만 했던 영자 씨는, 아픈 날엔 얼마나 더 지쳤을까요.


아무도 몰라주는 마음에, 혼잣말처럼 푸념을 내뱉으셨겠지요.

그런데도 결국, 도시락과 편지로 사랑을 먼저 건네셨네요.

조용하고, 깊고, 투박한 보온 도시락 같은 따뜻했던 당신의 사랑.






엄마의 사랑.
우리 영자 씨의 사랑은 여느 엄마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엄마는 해야 하는 것보다,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먼저 알려주셨고,
작은 일에도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년 전체 표창장을 받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긴 시장길을 지나, 마을 끝자락에 있는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를 건넸다고 하셨습니다.


“따님이 상 받았다며?”

영자 씨는 그 말을 전하며 저를 꼭 끌어안으셨어요.
기뻐서, 자랑스러워서, 웃음을 멈추지 못하셨습니다.


"어쩜 이렇게 뭐든 잘하니"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탈 때마다 처음 있는 일처럼 기뻐하셨습니다.


다 커서는 옷 입는 것 하나, 음식 만드는 것 하나에도,

그 말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똑같이 칭찬하셨습니다.


"어쩜 그렇게 다 잘하니"

청소, 빨래, 살림살이까지, 무엇을 해도 “참 야무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아이를 ‘순풍’ 낳았다고, 그마저도 잘한다며 자랑하셨다니

정말이지 이쯤 되니 살짝 민망해지던 걸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잘하는, 조금은 잘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영자 씨는 한 번도 저에게 ‘더 잘해야 한다’ 거나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어요.
속으로 바라는 것이 있었을지라도 그걸 강요하거나 드러내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 조용한 믿음과 따뜻한 칭찬들이 지금의 ‘자존감이 강한 저’를 만들어 주었어요.
저는 그런 제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영자 씨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이제야 그걸 알것 같아요.






영자 씨가 돌아가시기 전,

제 짝꿍, 남편님을 따로 불러 제 단점을 하나하나 말씀하시며 부탁하시더랍니다.

“잘 품어주게나, 양서방”

그 말씀이 얼마나 가슴에 와닿았던지, 양서방은 간혹 화가 치밀어 오르면

영자 씨의 그날 눈빛과 목소리를 기억하며 본인을 다독이곤 한답니다.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한참뒤에야 전해 들은 저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과 코가 아파왔습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살아가며 그 마음과 사랑을 더 자주, 더 깊이 느낍니다.

나의 엄마, 나의 영자 씨.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그 부드러운 살결과 살내음을 꿈속에서라도 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의 영자 씨.
엄마여서, 당신이어서, 저는 늘 사랑받고 행복했습니다.
그걸 알고 계시지요?


영자 씨의 바람대로, 사랑받는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 아름답게 살아가시길

오늘도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그분께 빌어봅니다.






영자 씨, 동생의 편지를 읽다 보니 왜 한참 어린 동생에게 저를 부탁하고 가셨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느끼고 있었지만, 우리 둘은 서로 참 많이 달라요.

이제는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 다름이 서로에게 약이 되는 법을 알았거든요.

우리 두 자매, 잘 보듬고 살아갈게요.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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