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 시금치 그리고 미역국
내가 마지막으로 차려드린 밥상.
가자미구이랑 시금치나물, 그리고 맑은 미역국에 늘 있는 김치.
감자랑 고구마를 드시고도 영자 씨는
여섯 시가 되니까 배고프다 하셨어.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고
영자 씨답다, 싶어서.
옛 분들은 그랬지. 간식은 간식이고, 밥은 밥이었어.
영자 씨도 늘 그랬으니까.
과일을 드셔도, 떡을 드셔도, 빵을 드셔도 밥은 꼭 따로 드셔야 했지.
그렇지 않으면 속이 따갑다고 하시면서...
"그게 뭔 소리야? 이미 한 끼는 충분히 드셨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매일 챙겨드리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 준비하는 한 끼 '기꺼이 하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음식솜씨가 없는 난 간단하면서 맛있게 드실 수 있는 그 무엇을 매번 고민했어.
내가 찾은 답은 늘 생선구이거나, 소고기 전골.
그날은 생선을 드시고 싶다 하셔서 앞 마트에 가서 가자미를 사 왔는데.
영자 씨는 '이면수'를 원하셨지만, 그날은 가자미가 더 실하니 좋다며 사장님이 강하게 권하셨어.
그리고 바로 구울 수 있도록 손질해서 굵은 소금을 뿌려 주셨지.
하나는 영자 씨, 또 하나는 정웅 씨를 위한 가자미 두 마리!
집에 와서 잘 손질된 가자미를 흐르는 물에 씻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후,
소금과 후추, 레몬즙을 살짝씩만 뿌려 밑간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사이 시금치나물을 무치고, 미역국을 끓였어.
영자 씨는 황태, 홍합, 다 마다시고 오로지 소고기 미역국만 고집하셨는데,
사실 우리 식구는 바다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모두는 소고기를 참기름 혹은 들기름에 달달 볶아 끓인, 소고기 미역국을 선호했지.
소고기는 단연코 우둔살이나 홍두깨살이 좋아.
기름기가 거의 없고 식감이 부드러워서, 담백하고 깔끔한 미역국을 즐길 수 있거든.
우린 모두 영자 씨의 미역국에 길들여져 있었으니까. 오래전부터.
우리 입맛에는 그게 늘 최고의 미역국이었지.
'잊지 말자. 밥 없이 먹어도 될 정도로 모든 음식 간은 심심하게...'
이미 영자 씨는 '속이 따갑다'며 배고픔을 돌려 표현하고 계셨어.
나는 냉큼 냉장고에서 가자미를 꺼내 부침가루를 앞뒤로 골고루 묻혀,
식용유를 넉넉히 두른 팬에 올리고 중불에서 튀기듯 구워냈어.
어차피 식초, 청양고추, 다진 마늘을 섞은 양념간장을 곁들일 예정이었으니,
가자미엔 간이 너무 배지 않도록 하는 편이 나을지도...
(살이 연하므로) '앞뒤로 한 번씩만 뒤집는 거 잊지 말라'며 영자 씨가 계속 주의를 주었던 선명한 기억.
"아, 알겠다고요!~"
가자미구이, 시금치무침, 그리고 맑은 미역국 한 그릇을 깨끗하게 다 비우시더니
“맛있다” 하시며 미소를 지으시겠지.
그 말과 미소 위에 가볍게 눌러 담은 고맙다는 영자 씨의 맘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어.
정웅 씨가 꺼억하며 "아~배부르다. 너무 많이 먹었나?"라고 하자
밉상이라는 듯 눈을 홀기시던 그 모습도 선명하네.
영자 씨는 늘 해주시던 일이었는데...
그 밥상에서 난 당신처럼 고마움을 표현한 적이 있었던가?
그날 이후로 난 가자미든, 이면수든, 뭐든 생선요리를 먹지 않아.
여간해서는...
그날 저녁이 그대로 떠올라서, 앞이 흐려져서 제대로 먹을 수가 없거든.
젓가락질도 서툰데 앞마저 흐릿해서 너무나 어렵거든.
깨끗하게 잘 먹는다는 게...
그러다 문득,
'우리 식구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영자 씨는 하얀 살 생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졌어.
영자 씨,
생선구이를 먹지 않은지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것 같아요.
집에도 입에도 큰 흔적을 남기는 까닭에 원래도 기피하던 음식이었는데...
11월이 끝나가던 늦가을, 소박한 밥상을 앞에 두고 행복해하시던 그날의 영자 씨가 떠올라서
너무 아픈 음식이 되어 버렸어요, 저에게는.
하지만...
이번 11월엔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려 합니다.
흰 살 생선 '이면수'와 '가자미'는 늦가을~초겨울(11~12월)이 산란이 끝나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시기라,
가장 기름지고 맛있다고 해요.
영자 씨는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거죠?
가자미 구이 꿀팁을 찾았어요.
버터 한 작은 술을 추가하면 풍미가 업!
전분가루 사용 시 더 바삭한 식감 가능.
냉장고에서 하룻밤 숙성하면 간이 잘 배고 살이 단단해짐.
다들 이미 알고 있을 법한 꿀팁이지만, 이 꿀팁까지 참고해서 맛있게 구워 먹으려고요.
정웅 씨도 분명 좋아하겠죠.
이번에는 영자 씨가 생각이 나도 울지 않고 맛있게, 잘 먹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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