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달 밝은 밤에

추석, 한가위만 같아라

by 토닥토닥 oz

영자 씨,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추석이 다가와.


내 기억 속의 추석이 북적였던 때가 있었어.

오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야 하고, 그때마다 "누구냐"고 물으셔서 피곤했던 시절.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로 큰댁을 가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행복했던 그 시절엔, 정말 몰랐는데...

그립더라.

'네 배가 더 크네, 내 배가 더 하네'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의 당신들이.

큰 여자들의 수다를 들으면서 '정말 왜 저러나 아줌마가 되면 다 저런 건가?' 싶었던 그 시절이.

이제서야 시끌벅적 요란했던 그때가, 그립더라. 이상하게도...






"내 배는 박 엎어둔 거 마냥 볼록해서 접히지도 않는데이~."


그 말끝에 배를 훌렁 내보이시던 큰 엄마.

보여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옷 속에 감춰진 배와 드러난 뱃살은 느낌이 다르긴 했어.

더 커보였달까? 보름달을 품은 듯한 모습에 살짝 충격~


"저 배 안 본 눈 삽니다~"


지금 나라며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을 텐데 말이지.


영자 씨의 배도 만만치 않았는데,

당신의 배는 배바지 선에서 한 번 나뉘는,

큰엄마 표현에 의하면 "접히는 뱃살"이었지.

그렇게들 많이 드시니...


음식 솜씨도 좋으시고 손이 크신 큰엄마는,

항상 오는 손님들 서운하지 않게 음식을 한가득 하셨고,

부침개, 나물, 송편, 차례음식으로, 이미 만들면서 배를 채우신 우리의 어머님들은 속이 메슥거린다며

큰 양동이에, 남은 나물과, 참기름, 고추장을 한가득 넣고

쓱쓱 비벼서 숟가락으로 나눠드셨지.

비빔밥은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라며...


양동이 비빔밥은 그야말로 '엄지 척' 올라가는 침 고이는 맛이었잖아.

서방님들 흉을 보며, 웃으며 먹던 삶의 애증이 담긴 맛이었달까.

큰 엄마의 양푼 비빔밥은 영자 씨의 수제비에 비길만한 소울푸드였지.


"비빔밥이 다 비슷한 거 아니야?" 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수제 고추장, 참기름, 된장, 유기농 나물을 넣어 만든

큰 엄마표 양푼 비빔밥은

그때도 아무 데서나 맛볼 수 있는 맛이 아니었어.

큰 엄마는 그야말로 장의 명인이셨거든.


"네 큰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도 그 맛이 안 난다."


영자 씨는 매해 고추장을 만드시며 '이상하네' 고개를 갸우뚱하셨는데.


음식은 손맛이 있는 게 분명해.

큰 엄마의 장맛, 영자 씨의 수제비는 달라 달라. 진짜 남달랐어.






애썼지만, 영자 씨는 예전 상태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었어.

지켜보는 우리도, 당신도, 서서히 그렇게 적응하고 있을 때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그 해가 가고, 다음 해 추석을 맞게 되었어.

또 돌아온 이 명절이 우린 너무 쓸쓸했지.


시간이 흐르며 집집마다 몸 불편한 분들이 늘어났고,

사촌, 팔촌, 친인척들은 각자의 삶을 꾸리고 고향에서 멀어져 갔어.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영자 씨는 고향 가는 것도 마다하셨어.


"선산으로, 대구로 한 바퀴 돌아올까?"


"뭐 하려고..." (안 가시겠다는 말씀)


몇 번을 여쭈었으나 같은 대답이셨어. 표정도 단호하셨고.


영자 씨를 위해 조심스럽게 한 제안이었지만

'안 가겠다' 하셔서 사실 얼마나 '다행이다' 하였는지...

이상하게 어른들 뵙는 게 나는 점점 힘들었거든.

영자 씨가 이리되신 사연도 만나는 분마다 물어오실 테니.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걸까,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났었는데,

영자 씨가 너무나 단호히 "난, 싫다" 하신 거였어.


"나는 고향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네 아빠가 간다 하니 더 싫다."


파파는 만나는 사람마다 영자 씨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정말 힘들고 괴로우신 듯 술을 드시고 흠뻑 취하셨고,

영자 씨는 그게 너무나 미웠던 거지.


'내가 저 사람을, 맘고생 몸고생만 시켜서 저렇게 되었다'는 말은 파파의 진심이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정말 아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매번 자기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럴 수 없는 거잖아.

그렇게는 누구도 돌볼 수가 없을 테니까.


영자 씨는 '위하는 척이라도 안 했으면 좋겠다'며 가슴을 치셨고 나는 그 감정의 비바람을 피하고만 싶었어.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 감정을, 삭이기가 정말 힘들었거든.



sticker sticker



그리하여 우린 서울의 집을 지키며 조용한 추석을 보내게 되었지.

송편이랑, 부침개랑, 과일이랑 음식을 잔뜩 쌓아 두고,

추석 연휴에 하나씩 꺼내 먹으면서, 산책도 가고, 시도 읽고...

영자 씨는 산 음식은 맛이 없다며, 특히 부침개는 영아니라고 고개를 절래 흔드시다가 나한테 눈총도 간간히 맞으셨지만.


그 추석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어, 그치?






2015년 추석,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영자 씨는 둥근 보름달 앞에서 소원을 비셨습니다.


"무슨 소원 비셨어요?"


"비밀."


지금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끝내 말씀하지 않으셨던 그 소원이 무엇이었을지.

그날 밤이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추석이 되고,

영자 씨의 마지막 소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 곧 한가위.

당신이 좋아하던 D시장의 송편을 사러 갈 참입니다.

그 유명한 호떡집은 아직 있을까요?


올 추석은 유난히 당신과 함께 먹던 그 송편과 호떡이 생각나네요.

송편을 사 오면, 사진을 찍어 보내 드릴게요.


올해도 둥근달이 떠오르겠지요.

그러면, 저는 또 소원을 빌겠습니다.

무슨 소원인지는... 저도 비밀.

하하...






"올해 2025년 추석은 10월 6일입니다.

서울 기준으로 보름달은 오후 6시 10분에 떠오르고, 6시 30분쯤 가장 둥글게 빛난다고 해요.

가족과 함께 달빛 아래 산책하며 달맞이를 즐기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구름이나 비가 올 가능성도 있으니 날씨 예보를 참고하세요.


더 자세한 달맞이 정보는 �한국천문연구원 달력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름달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속 작은 소원 하나 빌어보세요."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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