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의 매력
영자 씨,
아마득히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고 여우가 말을 하던 그 시절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먼 옛날, 그러니까 20세기 어느 가을이 막 시작되려던 무렵, 내가 세상에 왔다고 했지.
2번의 유산 끝에 고이 첫아이를 품에 안은 영자 씨는,
내심 아들을 기다리는 시댁 쪽 식구들이 뭐라 하던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았다지.
'요 쪼끔 하고 사랑스럽고 예쁜 것이 내 새끼구나, 내 딸이구나.' 싶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병원 오는 길에 깜짝 교통사고도 있었지만,
내가 당신 안에서 쏙 빠지며 '앙' 울음소리가 터지자,
그 순간에야 비로소 온전히 정신이 돌아오며, 세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했어.
두려움이 녹아내리고, 고통이 사라지는 텅 빈듯한 평화와 함께.
당신 인생에서 처음 맞은 기적의 순간이었다고.
그런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짓기 위해 당신은 대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작명소를 찾아가셨고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에서 지금 나의 이름 'J.E'를 받았다며 두 눈을 반짝이던 당신.
예전에는 '좋은 이름은 인생의 등불'이라 해서 작명소에서 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시며
그때의 일화를 하나 들려주셨지.

영자 씨가 이름을 짓고 나오는데, 기다리던 노부부 한 쌍이 묻더랬지.
“애 이름을 뭐라 했어요?
"J.E로 정했어요. "
"예쁜 이름이다. 근데 오늘 같은 이름 여럿 나가네."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까르륵, 아가처럼 웃었어.
지금도 여전히 생각할수록 재밌지 뭐야.
작명할 때 나름 큰 비용도 들었을 텐데, 모두 똑같은 이름을 받아 갔다니.
이건 뭔가 좀...
계속 깔깔 대는 내가 거슬린 듯 영자 씨는 살짝 눈을 흘기며
"한자가 다 다르잖니? 그 사람에게 필요한 글자 하나하나를 채워 만드는 거라니까."
그렇게 내게로 온 내 이름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어.
초등학교 2학년, 서울로 전학 온 첫날.
선생님이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셨어.
"저는 언~이라고 합니다."
"뭐라고?"
"언~입니다."
반 아이들이 막 웃기 시작하더라.
나는 분명 '은'이라고 말했는데, 입에서는 '언'이 되어 나와버렸고
그 경상도식 발음이 그들에게는 너무 재미있었던 거야.
하하하하, 호호호호 ~
얼굴이 빨개질 만큼 많이 창피했어.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하니 영자 씨가 그랬어.
"왜 또박또박 말하지. 제 이름은 언~입니다."
'아유, 영자 씨, '언~'이 아니고 '은'이라잖아요~'
내 사투리가 신기했는지, 책 읽기 시간마다 선생님과 회장은 꼭 나를 한번씩 시키는 거야.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겼고.
처음엔 싫었지만, 재미있어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던 거 같아.
작명소에서 내 이름이 탄생하던 그날, 같은 이름을 여럿이 받아 갔다더니
정말로 같은 반에 적어도 한 명은 같은 이름인 아이가 있었어요.
어떨 땐 공교롭게 성마저도 같아서 선생님들은 키에 따라
1번 .'은' ~, 2번 '은' ~ 이렇게 부르시기도 하셨지요.
그러나, 영자 씨 말씀처럼 제 이름과 같은 한자를 쓰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답니다.
제 이름이 제 인생을 밝히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답니다.
이름에 담긴 마음, 당신의 바람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
제 이름이 세상 널리 빛나지는 못하겠지만,
당신과 내 안에서는 아주 귀한 빛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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