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노래 - 가시리

안녕, 영자 씨

by 토닥토닥 oz

어느 날부터인가

영자 씨는 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처음엔 늘 있던 통증쯤으로 생각했어.

검사를 해보니 몸 안에 ‘돌멩이’가 있다고 그걸 빼내야 한다고,

그냥 두면 위험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레 말씀하셨는데,

영자 씨는 고개를 가로저으시며 강력하게 거부하셨어.


몸에 칼을 대는 건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의식을 잃더라도 그러지 말아 달라고

늘 유언처럼 똑같이 말해오셨으니까.


"살 만큼 살았다, 너희 덕분에 얻어 산 인생이 10년은 된다"


그 말을 그때 또 꺼내시면서.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잖아.

그대로 두면 독이 되어 퍼지고.

그럼 더 아프고 위험해지니까.


그런데도 영자 씨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어.

의사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물을 많이 마셔보라고 하시면서

물을 많이 마시면 돌이 가끔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아주 간혹 있으니 지켜보자고.

그리고는 당부하셨어.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오셔야 합니다.

아마 수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며칠 못 가, 영자 씨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셨고,

바로 119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어.

사진 찍고, 검사하고, 다음 날 곧바로 수술을 받게 되셨지.


의사 선생님이 수술은 잘 되었다며,

몸속에서 빼낸 꽤 큰 돌멩이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지.

연세도 있으시고 기저질환도 있으니

의사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하루 이틀 지켜보기로 했지만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그렇게, 며칠 지켜보고 예전처럼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구나'생각했어.

오히려 지쳐가는 내 걱정만 하면서. 한심스럽게...

그런데 말이야.

영자 씨는 결국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하셨어.


의식을 자꾸 잃는다고 하시더니, 어느 순간 말씀하시길


"패혈증입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어.

수술이 잘 됐다면서, 불과 며칠 전에 걱정 말라하시더니

이럴 수도 있는 건지...

그 사람말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어.






바짝 마른 입술에 딱 붙어버린 혀로 "우리 큰 딸"


그게 엄마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어.

그때까지도 나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운이 없긴 했지만, 이렇게 나를 알아보시고, 또렷하게 불러주시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는 건지,

왜 모두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바로 그날 저녁 다시 뵈었을 때, 엄마는 눈을 뜨지 않으셨지.

계속 눈을 감은 채 계셨는데, 눈물을 주룩 흘리시는 거야.

마치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할머니, 엄마…" 하고 부르는 우리말에 반응하시는 것처럼.


그리고 그 밤, 30분만 더 기다리면,

다음 날 찬란한 햇살을 볼 수 있는데,

영자 씨는 그대로 한밤에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어.


"엄마."라는 부름에

"우리 큰 딸"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시고

그다음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시더니...

딱 한번 당신이 살짝 흔들렸어.

얼굴을 찡그린 채, 싫다는 듯,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처럼.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어.


언제부턴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이제 갈 날이 머지않았네"


정말 그날이 올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울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어.

이게 무슨 일인지…


현실이 자꾸만 미끄러져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어.






영자 씨, 오늘은…

정말 오래 미뤄왔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29번째 편지.

오래오래 꾹 눌러둔 이야기.

영자 씨가 떠나던 그날.


나는 아직 그 순간을 또렷하게 떠올리기도 하고,

흐릿하게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기억은 흐트러지고, 마음은 부서져서…

무엇이 사실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본 당신.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영자 씨의 목소리.

그것만이 가슴 안에 바랜 사진처럼 남았어요.


그때 나는,

엄마가 위험하다는 걸 제대로 이해 못 한 것 같아요.

'괜찮으리라.

곧 집으로 돌아가리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와 함께'

그렇게 생각했어요. 늘 그랬으니까.


영자 씨,

사실 나는 조금 많이 두려워요.

혹시 당신이 날 원망하면서 가셨을까.

미워하면서 가셨을까.

나중에 나를 무서운 얼굴로 데리러 오면 어쩌나 하면서요.


지치고 힘들어서...

자꾸 아픈 엄마가 미워서...

마지막엔 간병인에게 모두 맡겨버리고,

당신한테 날카롭게 굴기도 했잖아요.

'영자 씨는 아파서 제대로 느끼지 못하셨을 거야.'

바라면서... 떨고있어요.






당신 몸에 마지막 바늘*이 들어갈 때

움찔하셨던 순간을, 뒤얽힌 기억 속에서도 꾸역꾸역 꺼내오게 됩니다.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닌지,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건 아닌지

자꾸 곱씹다가, 내가 정말 잘못한 거 같아서...

그냥 또 목이멥니다.


그 움찔함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몸이 마지막 과정을 통과하는 자동 반응이었다고 믿고 싶어요.


그 떨림과 눈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정말 마지막 힘을 다해, 우리를 느끼고,

반응하신 순간이었다고... 그렇게 믿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영자 씨가 떠나신 지 1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이제 곧 그날이 다가옵니다.

12월 16일,

당신을 떠나보냈던 그날이...

올해도 조용히 다가옵니다.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를 버리고 가시리잇고
가시고 나면 아니 올셰라
셔럽고 어와 설워하노라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까 하노라
서러운닛가 가시리잇고
붙잡아 두고 싶건마는
가시고 나면 그리울까 하노라

-고려가요, 작자 미상-








P.S

지난번 휴재 안내 글 위에 29화를 덧붙여 올립니다.





#영자씨이야기 #이별의노래 #가시리 #엄마의마지막



*중심정맥관(C-line) : 목이나 쇄골 근처의 굵은 혈관에 넣는 긴 관으로, 위독한 환자에게 약물·수액을 빠르게 투여하기 위해 삽입하는 응급 의료 장치.






휴재 안내 -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요.


혹시 ‘영자 씨 이야기’를 기다려주신 분이 계셨을까요?

브런치북 [영자 씨, 나는 조금 천천히 갈게]는 이번 주는 잠시 쉬어가고, 다음 주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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