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몰랐을까?

당신은 돌봐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by 토닥토닥 oz

흠.. 허.

숨을 크게, 한 번 두 번 몰아쉬며.

이제부터 하려는 얘기는..., 싫어도 덮을 수 없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

저 밑바닥부터 게워내어서 씻어버리고 싶은 어둡고 축축한 이야기.


영자 씨,

이 무거운 기억을 어찌해야 좀 가볍게 풀어낼 수 있을까?

가벼울 수 없는 이야기를 왜 가볍게 하려 하지?

스스로도 자문하다, 하지 말까를 몇 번이나 망설이다,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고 시작해.

지울 수 없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이므로.






"당뇨, 그걸 왜 감당 못하는 거야?

몸에 좋은 것 챙겨 먹고 먹는 양도 좀 줄여.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


"고구마, 떡, 빵, 과자 이건 간식이고, 밥은 또 따로 다 먹어야 하고

돌아서면 배고프고..."


"..."


"그리고 이런 소스 좀 싹싹 긁어먹지 말라고...

맛있어도 먹지 말라고...

몸에도 안 좋고, 없어 보이잖아."


"..."

"자기 몸 하나 자기가 관리 못하면 어떡할 거냐고... "


시험용 답안지 외우는 사람처럼 마음속에 담긴 말을 달달달달 쏟아내는 나를, 내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그래서 네가 뭐 하나 제대로 해줬냐?"


라고 하시면,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렸어.

죄송해서라기보다는, 어이없어서...

틀린 말도 아닌데 그냥 짜증이 났어.


어린 시절부터 내 기억에, 영자 씨는 한 달에 한번 그날이 오면 통증도 유난했고,

파파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받는 날도 많아서 항상 아픈 날이 다반사였어.


50대 이후엔 비만, 당뇨, 혈압까지...

건강문제가 점점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었지만,

영자 씨는 늘 아픈 사람...

당신의 아픔은, 평범한 일상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묻혀버렸어.






어느 날, 옆집 아주머니께서 "어머니 어지럽다며 저기 앉아 계시던데..." 하고 지나던 길에 들리셨길래


"아... 네, 동네 한 바퀴 운동 중이세요." 라며 나는 가볍게 받아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아주머니 말씀은

"아니, 엄마는 어지러워서 밖에 쓰러질 듯 계시는데 니들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니?"라는 얘기였나 봐.

그래서 '이상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가신 거였어.


난 정말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아.

아주머니가 가신 후, 한참 뒤에야 영자 씨가 돌아왔는데도, 그렇게 기운 없이 오셨는데도,

"밥 먹자"라는 말을 먼저 하셔서 걱정보단, 그냥 웃고 말았어.


쓰러질 듯 길가 한편에 쭈그리고 앉는 것은 저혈당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혈당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난 그때 정말 몰랐어.

아니, 그것이 '영자 씨를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 못했던 것 같아.


그렇게 몇 번을, 홀로 위험한 저혈당 경험을 하시며,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고 계신 것을... 정말 몰랐어.

몰랐다는 말로 다 덮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내 몸 하나하나에 새기며 이렇게 후회하는 순간이 올 거란 것도... 정말 몰랐어.

영자 씨, 나는 정말 모르는 거 투성이었어.


그래도 그때까진 한 번씩 "네가 뭐 했다고?" 하시며 힘찬 반박이라도 하곤 하셨는데...

그래서 "정말 뭐래?" 하며 못돼 먹은 눈으로 당신을 째려볼 수나 있었는데...






전화를 받고 달려가니, 문 앞에 입이 돌아가고 한쪽 팔이 이상한 영자 씨가 서 있었습니다.

"미안하다 내 딸."

그 어눌한 말투로 내게 건넨 첫마디가 그랬습니다.


"미안하다 내 딸."


너무 놀랐지만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워서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나서 다니시던 동네 한의원으로 우선 모시고 갔습니다.

침을 놔주시며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시더군요.

하루 이틀 만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거라는 말씀도 덧붙이시며...

경황이 없어서 제 기억에 없는 건지,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정확한 변명은 말씀 안 해 주신 듯해요.

''이라고 하신 듯도 하고...


'아, K 내과가 있었지' 싶어서 바로 찾아갔어요.

영자 씨를 보자마자 원장 샘은 구급차를 부르셨고,

'뭘 여기저기 꾸무적 되느냐' 얼른 큰 병원으로 가라 하시며, 답답하다는 듯 저를 보셨어요.

그렇게 불러주신 차를 타고 'N종합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뇌경색. 뇌혈관이 막혀서 뇌세포가 죽는 뇌질환.

당뇨 합병증이라 하셨지만 비만, 스트레스, 저혈압 모두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셨어요.


얼마 전에 있었던 집수리 사건이 결정적이었을까?

아니면, 야금야금 저 모든 것들이 영자 씨를 침범하는 동안, 우리는 다 몰라라 하고 있었던 걸까요?


뇌경색은 막힌 혈관을 최대한 빨리 뚫어주는 게 급선무라고 합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뇌세포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되므로 1분 1초가 중요하다 했어요.


의식이 있으셔서... 그리 위험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듯... 침 맞고, 주사 맞고 그러면 점점 돌아오는 줄 알았어요.

어쩐 일인지 우리 모두는 영자 씨가 곧 좋아질 거라 생각했어요.

병원에 왔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지겠지... 했.어.요.


그때...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면 영자 씨는 괜찮았을까요?


도대체 나는 왜 이리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걸까요?

답답한 듯 저를 보시던 K내과 원장님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어요.


'한의원에서는 왜 그렇게 돌려 말했던 걸까?

나 같은 사람은 K내과 원장님처럼 직설적으로 딱 집어서 말해줘야 알아먹는데 말이야.'


그리고 옆집 아줌마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영자 씨를 왜 그냥 거기 두고 온 거지? 모시고 왔으면 좋았잖아.


그렇게 남 탓도 했어요.






'어지럽다 어쩐다'라는'저혈당 오면 클난다'라는 말...

듣지도, 믿지도 않고 그저 동네 한 바퀴를 외치며 당신을 거리로 내몰았던 저를 생각해 봅니다.

병원만 다니면 뭐 하냐고...

삶을 개선해야 나아질게 아니냐고...

심한 말도 서슴지 않고 당신을 아프게 했던 그날들이 사무치듯 서럽고 죄송스럽습니다.


병원 모시고 가고, 약 사다 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이만하면 되었다 그냥 믿기로 했어요.

걱정은 되었지만, 눈앞 제 일이 우선이 되었고, 그게 당연한 이치라고도 생각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이므로...

최소한의 자기 몫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딱히 틀린 말 같지는 않지만, 내 엄마인데... 아픈 내 엄마...

어찌 현대를 들먹이며 이치를 논할 수 있었던 것인지...






함께 수영을 다녔다면 어땠을까요?

친구들과 갔던 여행을 당신과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요?

먹지 말라는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지 말고,

가끔이라도 몸에 좋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았다면 어땠을까요?


영자 씨라면 나를 위해 그렇게 했을 텐데요...

틀림없이 그랬을 텐데요.


정말 몰랐던 이유를 이제는 정확히 아는 까닭에,

맘을 담아가는 이 편지가 큰 짐이 되어 무겁습니다.

사연에 자꾸만 사탕가루를 뿌리고 싶은 마음도 그래서겠지요.


결국 오늘의 편지는 "죄송합니다"라는 다섯 글자에 머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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