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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사 대표의 2025서울국제도서전 관람기

by 김이름


2025서울국제도서전 다녀오셨나요?

사유화 논란, 사전 예매 티켓 조기 마감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지만, 올해 도서전은 유난히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 같아요. 인파를 뚫고, 저도 다녀왔습니다.


둘째 날인 목요일 오전 10시 반에 입장해서, 오후 4시 반까지 꽉 채워 서너 바퀴를 돌았어요. '오픈런'이라는 게 오픈 시간 전에만 가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더라고요..?(오픈런 한 번도 안 해봄...)


9시 50분쯤 도착했지만, 티켓 수령하고 실제 들어가는 데 30분 정도 걸렸어요. 입장을 기다리며, 티켓을 구하지 못해 같이 오지 못한 친구와 '누가 출판계 불황이래' '근데 책은 왜 안 팔리는데'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진짜 뭔데.


그동안은 주로 관람객으로 도서전에 방문했지만, 올해는 출판사 대표가 되고 나서 첫 방문이라 혼자 감회가 더 새로웠어요.

한 바퀴는 관람객의 눈으로, 한 바퀴는 '언젠가 이름서재가 참가한다면?' 하는 상상으로, 한 바퀴는 아는 분들께 인사드리러! 적어도 서너 바퀴는 돌겠다고 다짐했지요.(아이고 다리야)


꼬박 하루를 도서전에서 보내고 나온 뒤 소감은,

"책도 많고, 사람도 많고, 굿즈도 많고, 아무튼 많다. 그런데 뭘 봤더라...?"


너무 많으니까 아무것도 제대로 안 보이는 느낌이었어요. 모든 부스가 다 애쓰고 정성 들인 것이 보이는데, 정작 책은 눈에 잘 안 들어오더라고요. 책보다는 굿즈, 사인회, 이벤트 같은 것들이 주인공이었던 느낌.


그날의 메모를 간략하게 옮겨 봅니다.




1. 도서전 자체 그래픽이 취향 저격이었다. 진지하게 굿즈 살까 고민했을 정도(굿즈 안 사는 편). 일관된 비주얼이 행사 전반의 무드를 결정해 준 것은 좋았으나, 참여 부스들과의 연결성은 잘 모르겠다.


2. 주제관. 책 제목 없이 추천인과 책 속 문장을 보고 열어보는 상자를 만들어 나열했는데, 여기가 오히려 책을 발견하고 관심을 갖게 했던 것 같다. 작가부터 독자까지 다양한 추천인들의 책을 열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여기서 "사랑이 뭐예요?"라고 묻는 그림책 <사랑 사랑 사랑>을 운명처럼 만남.


3. 줄 서기 싫어서 사람 많은 곳은 피해 다니는데, 이번에는 몇 군데 줄을 서 봤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얘기하나, 왜 줄까지 서 있나 이야기를 엿듣는 시간이 귀했다. 이번 도서전은 '경험'에 초점이 맞춰진 듯.


1) 직접 체험하는 경험: 자기만의 문장을 뽑아 보는 오이뮤 <문장 선물>, 시공사 <한컴타자 입력 사무소>는 끝까지 줄이 길었다.

2) 나만의 스타 만나는 경험: 이야기장수 이연실 대표, 이슬아 작가, 무제 박정민 대표 등 출판계 인플루언서들을 만나기 위한 줄도 어마무시했다.

3) 한정판 굿즈 사는 경험: 도서전에서만 살 수 있는 책 혹은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과열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이 아닌 굿즈가 품절이라 발길을 돌리는 기현상.


4. 사람이 진짜 많은데, 격차가 큰 느낌. 바글바글의 와중에 텅 빈 부스도 꽤 있고, 어떤 곳은 구경조차 줄을 서야 하는 요상한 상황이 이어졌다.


5.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출판사는, 이번 도서전 그래픽을 담당한 워크룸 프레스. 책과 커피를 묶어 판매하는 패키지도 재미있었고, 디자인과 제작 방식이 다양한 책들을 엿보는 것도 좋았다. 로우 프레스의 <고을> 매거진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둘 다 프레스네. 정통(?) 출판사가 아니라는 점도 공통점.


6. 온통 하얗고 책이 많은 부스들 사이에서 ‘Life is full of mystery'라는 슬로건을 내건 까만 부스를 보았다. 책을 꽉꽉 채우는 대신 무드를 보여준 나비클럽이라는 출판사였다. 인상적이라 사진을 찍어 왔는데, 오늘 브런치 메인에 이 출판사의 브랜딩 일지가 올라와 반가워하며 읽었다. 책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어도 나 같은(기억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는 부분에 의의가 있는 걸까? 덜어낸다는 것이 생각하긴 쉬워도 직접 실행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용기에 박수와 응원을!


7. 그래서 나는 무엇을 샀나. 도서전까지 가서,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을 주로 샀다. 도서전에 가지 않았더라도 조만간 샀을 책들이다. 그게 괜히 아쉬웠다.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에는 책도 사람도 너무 많았다.

그나마, 그림책 두 권은 발견해서 구매했다. 한 권은 내용이 취향 저격, 하나는 만듦새가 취향 저격. 가격도 저렴하지 않았는데 두 바퀴를 돌고도 생각이 나서 다시 가서 샀다. 그림책 출판사들이 비교적 한산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권의 그림책 덕분에 도서전에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8. 아, 책 말고 오이뮤 지우개도 두 개 샀다. 왜 굳이 도서전에서 지우개를 샀는가. 오이뮤는 어디서든 보이면 일단 들르고, 갈 때마다 기분이 좋고, 왜 매번 뭐라도 사게 되는가...... 연구가 시급하다.


9. 도서전으로 향하는 아침,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나 오늘 30만 원 정도 쓸 거야.” “나도 나도.” 30만 원... 적지 않은 돈이고, 너무 감사한 일이다. 책에 관심과 자본을 쏟아주시다니! 코엑스를 빠져나오며 아침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 참, 30만 원을 책 사는 데 다 쓸 거라고는 안 했다.


10. 도서전에 다녀와서 기가 쪽 빠져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참가한 것도 아니고 구경한 주제에. 머릿속에는 여전히 “많다...”는 기억만 난다. 이렇게 많은 것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숙제만 남았다.




기대와 아쉬움 사이에서 이런저런 감상을 썼지만, 책과 관련된 행사가 흥했다는 건 아무튼 반가운 일입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재미있기는 했어요. 다만 '도서전'이니까, 몰랐던 책과 다양한 출판사를 발견하는 기쁨을 촘촘히 누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년 도서전은 어떤 모습일까요? 언젠가 참여하게 된다면, 이름서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계속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일단은 책부터 열심히 만들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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