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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책은 뭐예요?”

by 김이름

요즘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책 만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음 책은 뭐예요?"라는 말이 꼭 나옵니다.


분명 애정 어린 질문이라 반가우면서도, 머쓱합니다. '미정'이거든요.


기획안 열심히 쓰고 있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돌아서면 마음이 조급해져요.

'아, 빨리 다음 책 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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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출판사 문을 열며 세운 저의 계획은 '일 년 동안 <낯선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것 다 해보기'였습니다. MD미팅, 출간기념회, 북토크, 북페어, 북스타그램 등등등 내 책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것이 목표였어요. 6개월이 지난 지금, 확실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


<낯선 사람>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났고, 이름서재를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름서재가 어떤 출판사(가 될 것이다)라는 것을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브랜딩이고 뭐고, 출판사는 결국 책으로 말해야 하니까요.



고민을 이야기하자, 스승 같은 출판사 대표님께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올해 이름서재가 할 일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 20명을 적어보는 거예요. 그리고 만나세요. 그중 한두 명 계약하면 훌륭한 거고, 당장 계약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인연을 맺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길게 봐야 해요. '올해 바쁘시죠? 괜찮아요, 저는 3년도 기다릴 수 있어요' 하는 마음으로요. 생각보다 3년 금방 지나간답니다?"


허허 웃는 선생님이 꼭 산신령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출판도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니, 차곡차곡 관계를 쌓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도, 이름서재를 시작한 후에도, 출간 제안은 숙제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출간을 핑계로 덕심을 발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는 몇몇 편집자들의 말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쫓겨, 성사되지 않은 기획은 실패한 기획이라고 여겨졌거든요.


하지만 "20명의 작가를 만나보라"는 말씀을 들은 뒤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출간 여부와 상관없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기획을 하고, 그걸 핑계 삼아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보는 일. 당장 결과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이어질 인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제법 설레더라고요.


그렇게 사람도 기획안도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언젠가, 이름서재가 지향하는 출간 리스트 역시 자연스럽게 생겨나겠죠.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또 다른 선배님은 "계획된 책이 있든 없든, 매달 한 편 이상 기획안을 작성해서 제안한다"는 원칙을 지킨다고 하셨어요. 역시 성실이 답인가 봅니다. 기획을 꾸준히 하는 건 기본이고, '어떤 저자와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략은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요.

- 틈새의 틈새를 노릴 것

- 후순위를 공략할 것


간단해 보이지만, 적용은 정말로 쉽지가 않습니다. 틈새의 틈새, 후순위를 알아보려면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을 습관처럼 살펴봐야 하거든요.

혹시 "베스트셀러 목록이요? 베스트셀러가 목표는 아닌데요..?"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세상에 새로운 책은 없다고들 하지만,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분명 틈새가 존재합니다. 여기서의 틈새는 대형 출판사가 손대지 않는 영역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대형 출판사는 인건비를 비롯한 고정비가 높기 때문에 최소 판매 부수 기준도 높은 편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판매가 예상되지 않으면 진입이 어려워요.


그렇다 보니 '아주 많이는 안 팔려도, 분명 팔리는' 영역을 패스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은 곧 작은 출판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파이를 가진 영역이 분명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 출판사의 주력 분야 혹은 관심 분야 안에서 틈새가 있는지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분야 베스트 1위 저자(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저자)만 노리지 말고 2~5순위 작가들, 순위가 아주 높진 않지만 베스트 100 리스트에 여러 번 눈에 띄는 저자가 있다면 눈여겨보라는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요즘 저는 선배님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차곡차곡 리스트를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4월부터 6월까지, 4개의 기획안을 작성해 직접 전달했고 지금도 틈틈이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어요. '되면 좋고, 안 되면 기다린다!'는 마음으로요.



"다음 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이제 "계속 책 만드실 거죠?"로 들립니다.


경력이 많든 적든,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출판사 구성원들은 '다음 책'과의 사투를 벌입니다. 멈추지 않으려고요.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00에 관한 책인데요~~"하면서 말문을 연다면 고개를 들어 눈을 바라보세요. 신나서 은은하게 돌아 있는 눈빛을 마주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곧 그런 눈빛 장착하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이름서재 두 번째 책은 뭐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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