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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의 맛 – 협업이 마음 같지 않을 때

by 김이름

취미가 드럼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드럼이요?” 하고 되묻습니다. 마구 두드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한 번 더 묻기도 합니다. “이 드럼이요?”


네, 그 드럼이요!

드럼을 사랑한 역사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빅뱅의 <거짓말>을 다운받으려다가 실수로 뷰렛의 <거짓말>을 다운받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학교와 집을 반복하느라 별 낙이 없던 고3 수험생에게 중간중간 들리는 상쾌한 스네어 드럼 소리는 커다란 일탈처럼 느껴졌고, 스무 살 버킷리스트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대학 가서 밴드 하기.


수능이 끝난 그해 겨울, 동네 음악 학원에서 8비트를 연마하고, 스무 살에 소원하던 대학 밴드 드러머가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의 많은 시간을 벽마다 계란판이 촘촘히 붙은 합주실에서, 전공도 성격도 음악 취향도 뭐 하나 맞는 게 없는 개성 강한 친구들과 함께 보냈어요. 틈만 나면 모여 먹고 놀고 연습하고 싸우고 화해하며, 합주의 맛에 눈뜨게 되었지요.


그래서 드럼을 떠올리면 악기 자체보다 합주가 먼저 생각납니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곡을 함께 정하고, 잘하든 못하든 비슷한 수준의 개인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 합이 맞을 때까지 연습해서 기어코 한 곡을 완성할 때의 기쁨을 다 같이 누리는 것!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뚜렷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같이 해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을 만들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로 구성된 출판사 내부의 협업은 물론이고, 인쇄소, 제본소, 서점 등 책 한 권을 독자에게 가 닿게 하는 협업도 합주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사무실은 합주실, 혼자 하는 일은 악보를 외우고 몸에 익히는 개인 연습,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이 합주인 것이죠. 물론 저마다 상황과 목표가 다르니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합주할 마음이 없을 수도요.


그럴 때 어정쩡하게 모여 앉아 기싸움을 하던 스무 살을 떠올려 봅니다. '밴드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모인 혈기왕성한 스무 살들이 모여서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요.

전혀 친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친해지려고 애썼고, 싸우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했어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모르겠다는 고백도요. 연습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개인 연습은 필수였고, 서로의 악보를 공유하고 공부했어요. 어느 타이밍에 무엇을 칠지 혼자만 알고 있어서는 합주가 되지 않거든요.


그 과정에서 100퍼센트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것, 중간에서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와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함께 완성하는 기쁨을 누려본 덕분에 어려워도 협업의 세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나 봅니다.


혼자 살 수 없기에 사는 건 크고 작은 합주를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난히 일이 고된 날, 일이 합주라고 생각해 봅니다. 합주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무대 위에서가 아니더라고요. 연습실에서 지지고 볶다가 합이 꼭 맞는 순간,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 이번에 너무 잘 맞았다'고 다 같이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 막상 결과는 중요하지 않게 돼요.


일이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에도 아직 합을 맞추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다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일이 되게끔 하는 데 집중하고, 혹시나 결과가 마음 같지 않더라도 툭툭 털고 넘어가자고요. 서로의 타이밍을 맞추고 조율하다 보면, 언젠가 다 같이 “이번엔 잘 맞았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다음 주에는 가장 자주 지지고 볶는 디자이너와의 협업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이번 주도 각자의 합주실에서 신나게 지지고 볶으시기를! 그러다 합이 착 맞는 순간도 꼭 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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