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서재는 출판사입니다...만, 올해는 디자인, 이모티콘 제작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있어요.
그동안 인쇄는 책에 한정되어 있었는데, 다양한 인쇄물을 경험하며 새삼스럽게 인쇄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가장'이라고 썼다가 '참'으로 바꿔 적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마케팅!)
아트페어 디자인 작업 중 티켓과 봉투를 뽑았는데 원했던 색이 나오지 않아서 종이를 바꿔 전량 다시 찍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인쇄소 기장님의 한숨과 줄담배를 모른척하며, 노랑을 살짝 빼고 검정을 조금 올려달라는 식의 요청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어렵더라고요. 기껏 색 맞추고 돌아왔는데, 봉투 제작하면서 망쳐서 다시 하기도 하고, 종이가 덜 말라 재단하는 과정에서 색이 묻어나는 등 변수의 연속이었어요.
이것이 왜 이렇게 힘든가 생각해 보니, 저에게는 '통제 불가의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디자인은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 마무리할 수 있다고 쳐도, 실물로 구현하기 위해 각 공정의 제작자가 맡아서 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를 일일이 컨트롤할 수 없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큰 것 같아요(부쩍 흰머리가 많이 자랐습니다).
파주 인쇄소를 드나들던 어느 날, 저녁 늦게 도착한 스티커 샘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새로운 업체를 찾아보다가 포기하고 유튜브에서 <신인감독 김연경>을 보았어요. 거기서 김연경 선수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핑계는 100개도 댈 수 있어. 익스큐즈 하지 말고 솔루션을 찾아. 그래야 큰 선수 돼. 편하게 못 가요. 누구든 편하게 못 가. 거기 있는 사람들 다 편하게 간 줄 알아? 아니야. 어렵게 했어. 너도 어렵겠지만 더 어렵게 간 사람도 많아. 잘할 수 있다니까, 잘해 봐. 많이 도와줄 테니까. 알았지?"
유튜브 때문만은 아니겠지만(ㅎㅎㅎ) 자고 일어나 보니, 지금은 통제 불가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경험치가 쌓이면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으로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
문득 처음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 생각이 납니다. 돌이켜보니 그때도 저는 몸빵 중이었어요. 새로운 종이가 써보고 싶어서 충무로에 있는 종이 가게에 전화를 돌려 종이 샘플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종류별로 뽑아 보곤 했는데요. 업무 시간에 하기는 조금 눈치가 보여서 점심시간에 다녀오곤 했답니다. 어느 날 팀장님이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는데, 이러저러해서 점심시간에 종이 좀 받으러 다녀오겠다고 하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름 씨, 남들이 많이 쓰는 건 이유가 있어."
팀장님 눈에는 저의 삽질이 비효율적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지금은 너무나 잘 이해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저도 별 고민 없이 익숙한 종이와 판형을 쓰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불쑥불쑥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이걸로 하면 무슨 느낌인데??? 해봐야 아는 거 아닐까????"
이번에 중간중간 위기가 닥칠 때마다 디자이너 출신의 출판사 대표님께 도움을 청했어요.
"310g은 안 써봤는데, 표지가 두꺼우면 떨어질 수도 있어서 제본할 때 신경 써 달라고 여러 번 이야기하고 백지로 먼저 샘플을 만들어보세요. 새로운 거 할 때는 무조건 샘플 만들어보고 진행해야 돼요."
"백상지는 색을 먹으니까 종이를 바꾸면 해결될 거예요." 같은 경험자의 조언과 더불어,
"저도 아직도 그래요. 이렇게 해보면 어떤지는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거니까, 아직도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하고 삽질하고요. 근데 대표님은 저보다 더 잘하실 것 같은데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격려 멘트까지 제게는 김연경 선수 못지않은 후광이 비치더라고요!
제작을 담당해 주시는 상무님에게도
"앞으로는 이런 거 안 하고 책만 열심히 만들까 봐요" 하고 징징거렸는데
"이런 거 계속해요, 책만 하면 많이 안 늘어. 이것저것 계속해봐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때도 눈부시게 비치던 후광!
저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솔루션을 줄 수 있는 사람, '원래 다 그래'가 아니라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요.
아직 제 코앞의 솔루션도 찾을 수가 없어 갈 길이 한참 멀기는 합니다. 그래도 하다 보면 인쇄도 예측 가능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아자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