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행사가 많았던 10월 말, 이름서재는 선유 걷고 싶은 거리에 있었습니다. 선유도역에서 한강 공원으로 가는 길에 다양한 공방과 예쁜 카페들이 모여 있는데요. 매달 이 거리에서 '선유'라는 동네 이름을 딴 '해와당신 마켓'이 열려요.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시월의 선유'라는 큰 행사가 함께 열려서 다양한 공연과 프로그램, 아트 마켓, 먹거리 장터가 선답니다. 동네 주민으로 종종 놀러 가던 이 행사에 셀러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냐면, 냅다 문을 두드렸어요. 우연히 셀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는데, 아무리 봐도 '책'이 들어갈 카테고리가 없더라고요(핸드 메이드 아트 상품 / 먹거리 / 중고물품 /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주최 측에 연락해서 혹시 책이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어요. 예상외로 "와주시면 너무 다채로운 행사가 될 것 같다"고 환대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유일한 책 부스로 참여하게 됩니다.
막상 선정이 되고,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었어요.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북페어와 달리, 동네 마켓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책에 관심이나 가질까 싶더라고요. 고민이 되면 뭐다? 경험해 본다. 그렇게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부딪쳐보기로 했어요.
늘 그렇듯 첫날은 약간의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뻥 뚫린 거리에서 책을 팔게 될 줄이야! 부지런히 세팅하고, 옆 부스와 인사를 나누고 짐을 풀고요. 그러다 11시에 오픈하자마자 개시해서 어안이 벙벙. 책 구매하면 이름을 묻고 짧은 메시지를 적어드리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것도 잊어버렸어요.
"오늘은 한 바퀴 돌고 제일 마음에 드는 딱 하나에만 돈 쓰자고 했는데, 그게 이거예요!" 하고 기분 좋게 책을 사주신 덕분에 시작이 좋았어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부스 앞을 서성이다가 다음날 다시 와서 수줍게 책을 사간 고2 남학생(집이 근처예요? 묻자, 부천인데요. 해서 놀랐던),
유모차 끌고 걷다 멈춰서 서로의 옷에 묻은 오란다 부스러기를 털어주면서 “사랑이 뭘까 이런 건가” 깔깔깔 웃던 사랑스러운 가족(이름을 써주겠다니까 아기 이름까지 써 달라고 해서 최초로 세 사람의 이름을 적어드렸어요),
손녀에게 주고 싶다고 손녀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주시던 할아버지,
서로에게 책을 선물한 친구,
금요일에 와서 한참 이야기 나누고 일요일에 남편과 함께 책 사러 다시 온 다정한 분(책 사서 가다가 쭈뼛쭈뼛 다시 돌아오시길래, 아 이름을 잘못 적었나 싶어 긴장했는데 사진 찍자고 하셔서 최초의 기념사진도 남겨보았습니다),
파리로 웨딩 촬영을 하러 간다던 예비 신부님 등등등 다양한 분들이 부스를 찾아주셨어요.
'아니, 책 부스에 왜 오시지?'
'아니, 심지어 책을 사가네???'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북페어가 아닌 동네 마켓에서 책을 팔면? 아주 다양한 독자를 만날 수 있다!
<낯선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여행에세이입니다. 여행과 에세이의 조합, 사랑이라는 주제, 만듦새까지 2030 여성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북페어에서 만나는 독자들도, 온라인에서 반응하는 독자들도 대부분 2030 여성이었고요. 하지만 3일 동안 길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이 책의 독자는 성별도 나이도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어요.
특히 할아버지 독자 분들을 만난 것이 인상 깊었어요. 그동안은 <낯선 사람>이 할아버지에게 읽힐 거라는 상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분들 덕분에 아 사랑은 정말로 남녀노소 모두를 관통하는구나, 생각하며 제 안의 편견도 깨지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동네에서 열리는 행사이다 보니, 3일 내내 마주치는 주민분들도 있었는데요. 마지막날인 일요일이 많이 추웠거든요. 토요일에 책을 사간 분이 일요일에 다시 와서 핫팩 두 개를 쥐어주고 가기도 했어요. 아침에 나와보니 날씨가 추워서 주려고 일부러 가지고 왔다고요. 그러면서 어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 나 이런 대화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전해주셨어요. 언제 이런 마음을 또 받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부스에 적어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보고 지나는 사람들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하며 서로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어요. 작은 돌멩이를 던진 기분!
책을 구경하는 분들과도 사랑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답변이 하나같이 주옥같아서 틈틈이 적어두었답니다. 이 과정이 <낯선 사람>의 소재가 된 ‘러브 프로젝트’의 연장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랑은 허무에 저항하는 힘
사랑은 불편을 감수하는 것
사랑은 상대를 안쓰러워하는 것
사랑은 웬수지
사랑은 의리다 으리!!!!
...
혹시 시간 낭비는 아닐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즐겁고 따순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오프라인 행사는 12월에 부산에서 열리는 마우스북페어가 될 것 같아요.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북페어가 될 텐데요. 마우스북페어에서는 북토크도 진행할 예정이랍니다. 또 소식 전할게요. 모두 따숩게 입고 사랑 가득한 하루 보내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