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일을 잘하는 것으로 서로의 힘이 되어주자
150일을 하루 앞두고, 여름이가 뒤집었다.
제자리에 누워서 두리번거리는 것이 전부였던 아이의 세상이 180도만큼 넓어진 것이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여름이의 분투를 지켜봤다. 처음에는 양손을 뻗어 땅을 만지작거리고, 다음으로는 볼을 바닥에 붙이고 머리를 최대한 들어본다. 들릴 리가 없지만 며칠이고 그렇게 한다. 그다음엔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위로 꼬고 쪼끄만 발로 땅을 짚는다. 이때부터 용쓰기가 시작된다. 몸을 넘기기 위해 온 힘을 쓰고 제풀에 엉엉 울다가 또 힘을 쓰지만 무거운 머리가 복병이다. 울면서도 여름이는 매일, 쉬지 않고 시도한다. 그게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다 어느 날 반쯤 몸이 뒤집어진다. 팔 한쪽이 끼어서 낑낑대는 여름이를 웬만해서는 도와주지 않고 지켜본다. 그렇게 149일째 되는 날, 아침까지만 해도 버둥거리며 울던 여름이는 스스로 번쩍 몸을 뒤집어 머리까지 빳빳하게 들고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자기도 뿌듯한 모양이다.
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뒤집고, 되집고, 엎드리고, 기고 걷고 뛰는 아기의 일이 어른의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지, 마음처럼 되지 않아 엉엉 울면서도 매일 조금씩 자기 일을 하는 여름이가 이런저런 핑계로 할 일을 미루고 ‘아 못해, 아 늦었어, 아 이번 생엔 틀렸다’ 하고 있는 나보다 낫다. 아기를 보고 있으면 ‘원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다. 모든 일이 그럴 텐데, 그걸 꾸준히 잊는다.
내가 무수한 가능성이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빛나는 유망주였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넘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서른둘이 된 어느 날, 이렇게 내 인생은 만년 유망주인 채로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어떤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한 채 유일한 이름이 ‘여름이 엄마’에서 그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여름이를 보고 있으면 ‘얘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하는 생각이 든다. 종일 뒤집고 버둥거리다가 뒷머리가 땀으로 젖은 채 잠든 아이를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더 멋지고 커다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름아, 내가 멋진 사람이 되어서 너의 자부심이 되어줄게. 내가 커다란 사람이 되어서 너의 세상이 되어줄게. 너는 열심히 자라렴. 각자의 일을 잘하는 것으로 서로의 힘이 되어주자. 그러다 네 세상이 더 넓어지면, 네가 네 이름을 찾는 과정을 나는 옆에서 참견 않고 지켜봐 줄게.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잘 살아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