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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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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09. 2021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요즘 이상하다.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 심지어 뉴스를 볼 때도 여름이를 대입해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학교 폭력 관련 뉴스가 나오면 ‘우리 학교 다닐 때도 저런 애 있었지’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저 애 엄마는 무슨 생각할까. 혹시 여름이가 저러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로 생각이 펼쳐진다. 고작 6개월 된 아이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는 스스로가 어이가 없지만, 그렇게 시선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얼마 전 <아몬드>를 뒤늦게 읽었다. 워낙 유명해서 오히려 읽기를 미루고 있다가 여름이가 자는 시간 틈틈이 읽기 시작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며칠 만에 훌훌 읽어버렸다. 소설도 좋았지만 소설보다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꽂혔다.


4년 전 봄, 아이가 태어났다. 재미난 사연은 몇 있었지만 힘들게 낳은 것도 아니라 감동도 없었고, 마냥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침대 위에서 꼬물대는 아기를 볼 때마다 자동으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도무지 설명하기 힘들다. 어떤 감정을 붙여도 적당하지 않은 눈물이었다.

그냥, 아기가 너무 작았다. 낮은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만 해도, 몇 시간만 혼자 두어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명체가 세상에 던져져 허공을 향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내 아이라는 실감도 잘 나지 않았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다 해도 알아볼 자신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그 질문에서 출발해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고 의심할 만한 두 아이가 만들어졌고 그들이 윤재와 곤이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람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초고는 아기가 4개월이던 2013년 8월에 한 달 동안 썼다. 그 뒤 2014년 말에 한 달, 2016년 초에 한 달 집중적으로 고쳤다. 하지만 나머지 시간 동안 마음속에는 늘 두 소년의 이야기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 구상부터 완성까지 꼬박 삼 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 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행동하는 타입은 못 된다. 그저 내 안의 어떤 이야기들을 글로 길어 올렸을 뿐이다. 이 소설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 특히 아직도 가능성이 닫혀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거창한 바람이지만 그래도 바라 본다. 아이들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랑을 주는 존재들이다. 당신도 한때 그랬을 것이다. 나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내게 더 많은 사랑을 준 사람의 이름을 첫 장에 싣는다.


구구절절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공감이 가는 이야기.

산후조리원에서 선생님이 안고 나오는 아이를 보고 ‘아고 여름아 안녕’ 했더니 ‘아.. 여름이는 저기서 자고 있어요.’ 서로 머쓱했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한 번이 아니라 ‘종종’이었다). 신생아는 다 비슷하니까, 라며 웃어넘겼지만 ‘내 아이’라는 실감이 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분명 열 달 동안 나와 한 몸을 썼고, 배 아파 낳았고, 183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했지만 여름이를 잃어버렸다가 한참 후에 다시 찾으면 알아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여름이가 윤재나 곤이 같은 아이라면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되는 소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는 데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이 식상하게도 희망적으로 끝나 감사하다.


여름이가 자라서 어떤 아이가 될지 나는 모른다. 어떤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지금은 없다. 그냥 하루하루 건강하게, 조금 천천히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을 보낸다. 그러다 한 번씩 상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어떤 상황이든 결론은 ‘사랑을 많이 주자’로 끝난다. 되도록 올바른 방법으로 가능한 많은 사랑을 주자. 그것이 식상하지만 정답일 거라고 믿는다.


+ 아이가 4개월이던 때에 한 달 동안 쓴 초고라는 것도 파바박 꽂힌 포인트 중 하나였다. 아이를 낳고 나니 세상도 시선도 달라진다. 변화가 이야기가 되어 이런 멋진 소설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아이가 6개월이 된 지금, 겨우겨우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는 스스로를 채근하며 내 안의 이야기는 무엇이 있나 잘 들여다보아야겠다.

 

+ 2017년에 발간된 <아몬드>는 작년 9월에 92쇄를 넘겼고,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고 했다. 글이 글에서 멈춰 있지 않고 현실의 윤재와 곤이를 찾아간 셈이다.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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