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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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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r 08. 2021

유모차와 함께 걷는 길

날씨가 좋아서 큰맘 먹고 외출을 했다. 오늘은 가볍게 샌드위치나 먹을까 하고 서브웨이 앞에 갔는데, 입구에 도착해서야 계단이 두 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자주 왔었는데도 평소엔 계단이 있는 줄도 몰랐다. 혼자서 낑낑 앞바퀴를 들고 유모차를 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를 혼자 두고 주문을 할 수 없어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면서 주문을 한다. 허니오트에 슈레드 치즈, 치즈랑 양파랑 같이 빵을 구워주시고요, 할라피뇨와 피클 빼고 오이 많이 주세요. 평소와 똑같은 주문인데 아이를 살피며 가느라 맞게 이야기했는지 헛갈린다. 넓고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을지로입구나 충무로 서브웨이였으면 시도도 못했을 것이다.


테이크아웃을 하려다가 마침 아이가 잠들어 먹고 가기로 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을 떠올려 본다. 좁고 사람 많은 곳, 계단이 있는 곳을 빼니 자주 가던 동네 카페, 빵집, 밥집이 가장 먼저 제외된다. 한참만에 포장이 가능한 사거리 만두 가게와 새로 생긴 스타벅스 정도를 생각해내고 허허 웃음이 났다. 역시 그냥 집에서 배달이 답인가.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오면 세상의 턱만 눈에 들어온다. 혼자 다닐 땐 보이지 않던 턱이다. 보도블록은 고르지가 못하고, 가게 입구에 한 뼘도 안 되게 설치된 문턱이 (조금 과장해) 벽처럼 높아 보인다. 문턱은 그냥 문턱인데 그게 꼭 엄마가 된 내 앞에 놓인 턱처럼 보이기도 해 슬쩍 기가 죽고 만다. 한창 따릉이를 탈 때에도 길에 턱이 왜 이렇게 많냐고 투덜거렸었는데, 그거랑 또 다른 기분. ‘유모차를 끌고 혼자 나올 거면 그냥 집에 계시오’처럼 느껴져 슬프다고 했더니 엄마가 그럴수록 자주 나가라고 했다. 자꾸 나가보면 자주 가는 카페와 빵집과 밥집이 새로 생길 거라고, 그걸 찾는 재미가 새롭고 또 쏠쏠할 거라고.


집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에게 세상 구경도 시켜주고 나도 콧바람을 쐬려면 밖에 안 나올 수는 없으니 기왕 나갈 땐 씻고(!) 예쁘게 입고 안 가본 길을 걸으려고 애쓴다. 육중한 유모차가 피해라도 줄까 봐 아직까진 문턱을 넘어 가게나 식당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지만, 길을 걷는 건 자유니 산책만큼은 세상 힙한 노래를 들으며 어깨와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걷는다.


++

어제는 산책을 나갔다가 밥시간을 놓쳐 길가에서 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방풍 커버를 뚫고 나오는 우렁찬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흘끗흘끗 돌아보았다.

“응응 집에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자. 엄마가 미안해~~~~~”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뒤로 넘어가고, 마음이 조급해 뛰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곁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아이고 애기가 우는 것도 예쁘네’ 하시며 따라오셨다.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아이고 예뻐라. 그래그래 우는 것도 예쁘구나’ 하며 말을 건넸다.

“애기 왜 우는 거예요?”

“배가 고파서요”

“아이고 배가 고팠구나. 나중에 할아버지가 간식 사줘야겠네” 하며 천천히 곁을 지나가는 낯선 할아버지 덕분에 땀이 뻘뻘 나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할아버지께 눈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며 아이에게 말했다.

“배고프지이. 얼른 들어가자. 밥 먹자. 우는 것도 귀엽네”


내일도 날씨가 좋기를! 그 핑계로 또 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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