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다. 꼬박 3주 만이다. 아빠의 책과 엄마의 그림과 각종 소품들이 복작거리던 넓은 집에서 온통 하얗고 회색인 우리 집으로 돌아오니 낯설다. 여름이도 그런지 잠에서 깨 연신 두리번거린다. 임신한 이후로 지금까지 두어 달에 한 번 씩 엄마집에 내려가 2~3주 정도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다. 아기는 우리 힘으로 키울 거라고, 엄마의 노후에 육아는 없을 거라고 큰소리 빵빵 치던 나였는데, 여름이의 200일 중 1/3을 엄마집에서 보냈다.
처음 내려갔던 건, 작년 3월. 꼭 일 년 전 나는 3월 9일 자로 퇴사를 하고 엄마집이 있는 충청도로 훌훌 떠났다. 코로나 핑계도 있었고, 마침 퇴직한 엄마도 남는 게 시간이라 이번 기회에 함께 시간을 보내보자는 취지였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고, 둘이서 코스를 정해 산책하고 예쁜 카페에 가고 그림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며 독립해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쭉 따로 살았기에 이런 즐거움을 몰랐는데, 엄마랑 노는 건 생각보다 많이 즐거웠다. 일주일 뒤에 데리러 온 남편을 혼자 돌려보낼 정도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엄마아빠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며칠 더 놀다가 내려갔는데도, 엄마아빠를 보내고 혼자 몰래 엉엉 울었다. 아쉬워서. 그 후로도 아기를 낳기 전에 두어 번 더 엄마집에서 2주씩 보내고 돌아왔다. 성인이 된 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 자유롭고 온전한 엄마와의 긴긴 시간이었다.
아기를 낳고서는 40일 만에 엄마집에 갔다.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서! 처음으로 손주를 맞이한 아빠와 엄마는 꽃바구니까지 주문해 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나와 여름이에게 무려 안방을 내어주고, 서재 바닥에 잠자리를 마련한 엄마아빠가 낯설고 또 귀여웠다. 아빠는 그렇다 쳐도 엄마가 침대를 양보하는 건 처음 봤다.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군.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게 더 신기했다. 엄마아빠는 엄마가 된 내가 낯설고 또 귀여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낯설어하고 귀여워하며 함께 육아를 했다. 새벽에 여름이가 울면 그게 세 시든, 네 시든 셋이 쪼르르 모여서 왜 울어? 어디 아파? 하기를 여러 날. 엄마의 입술이 터지고 아빠가 종종 지각을 하는 와중에도 누구도 싫은 내색 없이, 짜증 없이 작은 존재를 서로 안겠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낯설었다. 우리 아빠가 저렇게 한결같이 인자했었나. 우리 엄마가 저렇게 강철 체력이었나. 덕분에 여름이는 외갓집에 다녀올 때마다 몰라보게 쑥쑥 자랐고, 나는 엄마아빠 품에 여름이를 안겨 놓고 일도 하고, 책도 읽고, 마사지도 받고, 늘어지게 잠도 잤다. (몸무게도 2킬로나 찌고...) 41일에서 63일, 126일에서 147일, 186일에서 204일. 모든 것이 처음인 신생아 기간도, 죽음의 4개월 원더 윅스도, 단유 도전도 엄마아빠 덕분에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달콤했던 3주 간의 친정챈스가 끝나고 오롯이 혼자 하는 육아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한결 적응이 된 기분이다.(적어도 집에 오면서 엉엉 울지는 않는다) 집에 돌아와 거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우리 사진으로 가득하던 장식장을 물티슈와 기저귀로 채워 거실 한쪽으로 옮겼다. 신혼집이 3년 5개월 만에 애기 키우는 집으로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으나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널찍하게 깔린 매트와 그 위에 하얀 누비이불과 우리 취향의 애기 물건들이 사랑스럽다.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이 집을 자기 물건으로 지배하고 모른 척 잠든 여름이다. 여름이가 침범한 우리의 일상은 (아직까진) 평화롭다. 우리 셋의 영역에서 우리 셋의 일상을 잘 꾸리다가 5월에 꽃필 때쯤 (엄마아빠가 컨디션을 회복할 때쯤) 다시 가야지, 나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