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아이가 아팠다. 6개월까지 엄마의 면역력을 몸에 지니고 보호받던 아기들은 6개월 이후부터 자기의 면역력으로 평생을 산다. 또 한 번 독립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모유 수유, 수면 습관, 이유식 단계 같은 것들이 전부였던(그것도 벅차게 겨우겨우 따라갔던) 육아에 ‘아이가 아프다’는 산이 나타났다. 맑은 콧물로 시작했던 증상은 기침으로, 고열로, 호흡 곤란으로 이어졌다. 처음 겪는 아이의 증상이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날씨가 좋다고 기어코 산책을 다녀온 탓일까. 목욕을 너무 오래 했나, 며칠 전에 감기 기운이 살짝 있었는데 그게 옮았나, 설마 코로나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병원에 데려갔더니 감기도 감기지만 숨소리가 조금 이상한 것이 후두염일 수 있다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혹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으면 바로 응급실로 가라는 무시무시한 말에 뜬눈으로 곁을 지켰다. 열이라도 떨어지라고 얇은 여름옷을 입히고 밤새 손수건을 적셔 아이의 목이며 겨드랑이를 닦아주었다. 좀 괜찮은가 싶더니 새벽이 되자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파서 푹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서 우는 아이의 입에 미지근한 물을 흘려 넣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애가 탔다. 응급실을 가더라도 코로나 시국이라 더 고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가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아침이 밝자마자 다시 소아과를 찾았다.
크룹(급성 폐쇄성 후두염)이라고 했다. 아직은 많이 심하지 않아 입원까지는 안 해도 된다며 혹시 주말 사이에 상태가 안 좋으면 대학 병원으로 가라고 소견서를 써주었다. 무시무시했다. 항생제가 포함된 새로운 약과 네뷸라이저를 대여해 집에 왔다.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네뷸라이저에 약을 섞어 코에 대주고 낯선 느낌에 우는 아이에게 최대한 밝은 얼굴로 노래를 불러준 뒤에야 잠든 아이 옆에 몸을 뉘일 수 있었다. 다시 일어나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의 반복.
다섯 시가 되어서야 밥 생각이 났다. 영 귀찮고 입맛도 없어서 오빠가 올 때까지 버티려고 하는데 엄마한테 페이스톡이 왔다. 얼굴이 안 좋다, 밥 먹어라, 애기 잘 때 같이 조금 자라, 잔소리가 이어져도 꼼짝 않다가 “아이는 아프고 나면 쑥쑥 크지만 엄마는 아이가 아프고 나면 훅훅 늙는다?”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나 양상추와 파프리카와 당근과 오이와 사과, 토마토를 챙겼다. 요거트에 해바라기씨와 아몬드, 파인애플 네 조각을 넣고 올해 들어 가장 건강한 한 끼를 챙겨 먹었다. 이 와중에도 늙는 건 싫다. 후우.
다행히 아이는 이틀 만에 컨디션을 회복했다. 숨소리도 괜찮아지고, 에너지도 장난기도 목소리도 돌아와 꺄아꺄아 소리 지르며 웃고 장난을 친다. 아직까지는 밤에 자다가 깊은 기침을 뱉고 콧물이 방울방울 하지만, 이게 어디냐 싶다.
매일 밤 잠을 안 자 고생시키던 아이가 약 기운에 내내 자는 걸 보니 수면 교육이고 분리 수면이고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됐고,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걸 또 겪어보고야 안다.
아이가 아팠다고 하니 친구가 밥을 보내주었다. 밥이라도 잘 챙겨 먹으라고. 동생은 집으로 달려와 아이를 봐줬다. 덕분에 모자란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빠는 주말 내내 온전히 육아를 도맡았다.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네뷸라이저에 약을 섞어...를 나보다 꼼꼼하게 잘해주어 나는 좋아하는 꽈배기나 먹고 낮잠을 자며 휴일을 즐겼다.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서툰 육아도 힘든 하루도 거뜬하다. 아프지 말자,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