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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r 30. 2021

맘카페의 세계

 4년 전, 결혼을 하고 우리가 이 동네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 동네 지역카페(라고 쓰고 맘카페라고 읽는다)의 존재를 알았다. 동네 정보나 알아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입했는데 볼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도움이 되는 대부분의 정보는 일반회원부터 볼 수 있으며, 막 가입한 새싹회원이 일반회원이 되기까지 등업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일반회원이 되려면 가입 후 한 달이 지나야 하고, 7개의 게시글과 50개 이상의 댓글, 출석 100회 이상을 만족해야 한다. 그마저도 게시글을 쓰기 위해서는 출석 30회, 댓글 20개의 장벽을 넘어야 첫 글을 쓸 수 있는데, 새싹회원은 무언가를 추천하거나(00미용실 갔는데 머리 잘하네요, 추천합니다), 브랜드명/상호를 노출하거나(00빵집 맛있네요), 100자 이하의 글을 쓰거나(띄어쓰기 제외), 하루에 몇 개 이상의 게시글을 영혼 없이 올리는 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하아,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셀프 홍보와 무분별한 광고를 거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시에는 아기도 없었고, 필요하다면 서울 어디든 찾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서 동네 정보를 얻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걸 보면 '맘카페'에 대한 편견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가입만 하고 뜸하게 카페를 방문하다가 결국 강퇴를 당했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임산부가 되었다. 임신을 하니 동네 생활 정보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생겼다. 동네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 평이라든가, 우리 동네 임산부 혜택이라든가,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 동네 카페 같은 소소한 정보들이 아쉬워졌다. 다시 카페에 가입해 마음을 다잡고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댓글부터가 난관이었다. 평생 댓글을 달아본 일이 거의 없어서 뭐라고 써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응원합니다. 화이팅하세요. 보기 좋네요... 고르고 골라 댓글을 달고 나면 현타가 왔다. 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무려 8개월에 걸쳐 꾸역꾸역 댓글 20개를 달고 드디어 첫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왔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진심으로, 내 책 보도자료 쓸 때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러다 막달이 되었고, 무거운 배를 이끌고 서울식물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최대한 간결하게 적었다. 서울식물원은 공공기관이니까 괜찮겠지? 다음날 카페에 들어가 보니 내 글은 삭제되어 있었다. 서울식물원도 입장료가 있어서 안 된단다. 그날로 카페 어플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어언 7개월.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속도 없이 최선을 다해 새싹 게시판에 글을 적는다. 아기를 키우며 마주하는 수많은 '처음' 앞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육아 선배가 없고, 여기저기 발로 뛰어 알아볼 만큼 부지런하지 않고, 일도 해야겠는 나 같은 무지렁이 엄마는 믿을 구석이 맘카페뿐이다. 까다롭든 말든 등업을 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카페에 글을 쓰는 게 쉽지는 않다. 아직도 등업까지 게시글 하나가 남았다. 뭘 쓰지, 뭘 써야 삭제되지 않고 무사히 등업을 할까. 등업을 하게 되면 당장 다음 영유아 검진 때 갈 꼼꼼한 소아과부터 물어봐야지! 진짜 뭘 쓰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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