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내내 낮잠을 안 자고 버티던 여름이가 드디어 곯아떨어졌다. 뜨거운 커피를 내려 노트북 앞에 앉았다. 괜히 엄마가 보고 싶은 시간이다. 전화를 하면 좋겠지만, 할 수 없다. 오늘은 엄마가 미술학원에 가는 날이니까. 두 시간 뒤에 영상통화가 올 테니, 아쉬운 대로 엄마에 관해 써 봐야겠다.
우리 엄마는, '엄마'보다 자기 이름 석 자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예쁘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유능한 사람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우리 엄마가 티브이에 나오는 '전형적인 엄마'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늘어난 티에 앞치마를 두른 티브이 속 엄마들은 새벽부터 아침밥을 차려 먹이고, 궁상을 떨더라도 자식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하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주 울었다.
우리 엄마는 언제나 예쁜 옷을 입고 머리에 롤을 만 채로 토마토를 갈아 식탁 위에 식구 수대로 올려두고는 출근 준비를 했다. 먹든 안 먹든 자유다. 엄마는 우리와 상관없이 공석에서나 사석에서나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넘어져서 무릎이 깨질 때 빼고는 잘 울지 않았다(자주 넘어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엄마는 우리 엄마인 때에도 자기 커리어에 최선을 다했고,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소홀했냐면, 그것도 아니다. 아침에 주스 한 잔을 줄 때도 집에서 제일 예쁜 잔에 담아 주었다. 평일에 바쁜 대신 주말과 방학에는 무조건 시간을 냈다. 초등학교 땐 새벽에 함께 수영을 다녔고, 중학교 땐 저녁에 함께 재즈 댄스를 배웠다. 해마다 생일 파티를 근사하게 해 줬고, 운동회와 소풍 같은 행사 때에도 음식을 야무지게 '주문'해줬다. 그뿐인가. 시댁 식구들의 취향과 사이즈를 그 집 아들(아빠)보다도 더 잘 알고, 30년 넘게 각자에 맞는 선물을 챙긴다. 이제 아빠의 주변 사람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엄마가 너무 완벽해 보이지만, 우리는 안다. 엄마는 백조과라는 걸. 엄마는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끊임없이 발을 구르는 사람이다.
외할머니는 엄마 얘기만 하면 고개를 휘휘 젓는다. 딸 셋 중 제일 악바리였다고. 엄마는 평소에 잘 놀다가도 시험 기간만 되면 새벽 네시에 학교에 갔다고 한다. 깜깜한 골목길이 걱정되어 데려다주려고 시계 옆에서 밤을 새우다가 깜빡 졸고 깨면 벌써 가고 없었다고. "라떼는 등록금 안 냈어. 장학금 받고 다녔지" 하던 엄마의 말이 진짜였다는 게 소름 돋는다.
할머니는 한 번도 엄마 등록금을 내러 가지 못했다고 한다. 등록금 내러 가서 엄마 이름을 말하면 접수해주시는 분이 "아이고, 딸아가 공부를 잘하나 보네요" 하며 0원이 찍힌 영수증을 줬는데,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무조건 등록금 내러는 할아버지가 갔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엄마는 또 깜깜한 새벽길을 혼자 걸어갔을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엄마는 조퇴 한 번을 쉽게 하지 못했다.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고, 예정일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나 때문에 출산 3주 만에 출근을 해야 했다. 제대로 된 시터를 구하지 못해 쉬는 날마다 나를 업고 남의 집 벨을 눌러 "우리 애기 봐주실래요?" 해야 했고(인터넷이 없으니 건너 건너 수소문을 하거나, 전업주부가 많아서 무작정 벨을 눌러 애기 맡길 분을 찾기도 했다고 한다), 다섯 번만에 좋은 분을 만나 정착했다. 그때 나는 고작 8개월이었다. 나와 동생이 일으키는 수많은 말썽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집에 없어서 그런가?' 자책했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에게 워킹맘이어서 괴로웠던 적이 없냐고 물어봤다. 왜 없었겠냐마는, 괴로울 때마다 '(네가) 나한테서 태어났으니 할 수 없지 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너무 애쓰지 말자고,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안 되는 건 그냥 인정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내 딸이라 좋은 것도 많잖아, 오호호호"하고 웃었다. 물론이다.
엄마가 집에 있어주길 바랐던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자라면서, 특히 2-30대에 엄마의 커리어가 내게도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잘 놀고(이것이 중요한 포인트), 할 땐 제대로 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엄마로부터 보고 배운 것들이 지금은 내 삶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다.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록>에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로 윤여순 전 LG아트센터 대표가 나왔다. 자기 이름 옆에 놓일 타이틀을 만들기까지 녹록지 않았던 과정들을 이야기하던 차에, 여러 가지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건 “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라고 했다. 30대에 혼자서 딸 셋을 키운 어머니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최선을 다 하셨고, 그런 분을 보고 살다 보니 그런 태도가 몸에 배었다고. 어떤 인터뷰에서 윤여정 배우도 "어머니께 배웠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내가 어디 가서 쥐콩만큼이라도 인정을 받는다면, 그건 다 엄마에게 배운 것일 것이다. 진심으로, 엄마처럼 살고 싶다!
엄마는 31년 4개월 만에 명예퇴직을 했다. 그리고 요즘은 월화수목금 나보다 바쁘게 지낸다. 오늘은 미술학원을 갔고 내일은 다도학과 수업을 들으러 갈 것이다. 그런 할머니라니, 정말 멋지다. 나는 여름이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내가 그랬듯,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