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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23. 2021

사돈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2017년 5월에 결혼했다.

다음 달인 2017년 6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 그리고 우리 부부는 강원도 인제에 모인다. 공통분모라고는 아들, 딸뿐인 이상한 조합. 처음 일 년은 대부분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고마워, 사랑해로 끝나는 술자리도 한두 번이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유일한 공통분모인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뭘 하면 재미있게 보낼 수 있을까. 그때 생각해낸 것이 유튜브다. 뭔가 꺼리를 만들어 매달 만날 때마다 촬영을 하자!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컨테이너 창고에 그림을 그리고, 모여서 김장을 하고, 여름작물을 수확하고, 시장 구경을 갔다. 처음엔 그걸 꼭 해야 하냐고 하던 어른들은 이제 누구보다 촬영에 진심이고, 다음 달에는 뭘 준비하면 되냐고, 이번 달 영상은 언제 올라오냐고 안달이다.


기획과 촬영과 편집은 모두 오빠가 한다. 독학으로 더듬더듬 시작한 영상 편집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뭐든 '꾸준히'가 제일 어려운 나와 달리, 부지런하고 성실한 오빠는 2년을 한결같이 열심히다. 덕분에 가족들만 공유하던 채널에 구독자도 생겼다. 최근에 구독자가 600명이 넘었다고 신나 했는데 그게 참 귀엽고 또 멋지다!


나는 가끔 썸네일을 만들어주거나 자막에 띄어쓰기를 봐주는 정도로 오빠의 노력을 응원한다. 남들은 내가 운영하는 채널인 줄 아는데, 내 지분은 썸네일 정도가 전부다. 클라이언트(오빠)가 영상을 편집해서 보내주고 '썸네일 만들어줘'를 오백 번쯤 말하면 그때 하나가 나온다.


우리 채널은 요즘 갬성과 거리가 멀고, 아주, 아주, 평범하고 투박하다. (그래서 구독자 연령층도 매우 높다 XD) 상관없다. 애초에 목적은 '기록'이니까. 며칠 전에도 잠이 안 와서 영상을 정주행 했는데, 결혼 초의 풋풋한 우리, 젊은 부모님들, 임신 소식을 알리던 날, 점점 배가 불러오는 나, 매달 몰라보게 자라는 여름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상에 차곡차곡 시간이 쌓이는 중이었다.


요즘은 '새로운 음식 만들어 먹기'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여름이의 주말'이 주된 콘텐츠다. 평소에 어른들과 함께 먹어보지 않았던 메뉴들을 정해서 재료를 준비해 가면 아빠들은 요리에 필요한 장비(화덕, 숯, 장작 등등)를 만들고, 엄마들은 텃밭에서 곁들여 먹을 야채를 뜯거나 사이드 메뉴를 준비한다. 덕분에 지지난 달에는 직접 화덕을 만들어 피자와 와플을 구워 먹고, 지난달에는 랍스터로 만든 회와 버터구이를 먹었다. 이번 달에는 숯불에 장어를 구워 먹을 예정이다. 아주 기대가 된다 :))


오빠의 유튜브로 우리는 '사돈과 각자의 딸, 아들'에서 진짜 한가족이 되었다. 엄마들과 아빠들은 이제 둘도 없는 친구다. 당연히 삐그덕거렸던 순간도 있었지만 유튜브 영상이 쌓이는 동안 우리의 시간도 쌓여서 이제는 함께하는 시간이 기대되고 즐겁다.

욕심 같아서는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영상을 남겼으면 좋겠다. 오빠가 고생을 해야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역사를 쌓아가고 싶다. 나는 오빠 옆에서 꾸준히 글로 우리를 기록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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