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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15. 2021

동네 생활의 즐거움

5월 초에 마감이 끝나고 다음 작업까지 한 달 반 정도 시간이 남았다. 날씨도 좋겠다, 여름이를 데리고 자주 외출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네 마트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여름학기 문화센터도 등록했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틈틈이 유모차를 끌고 낮에 동네를 다니다 보니 못 보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아파트 단지에 열리는 화요장터다.



매주 화요일,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선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괜히 쑥스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해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첫날. '뭐가 많다' 정도로 구경을 마치고 호다닥 집으로 돌아와 찾아보다가 화요일마다 장이 선다는 걸 알았다. 아파트 단지마다 요일을 정해서 장이 선다고 한다. '다음 주엔 뭐가 있나 제대로 구경해 봐야지.'


일주일 뒤, 두 번째로 방문한 화요장터는 역시나 컸고, 이번엔 다양한 품목에 놀랐다. 일주일에 한 번 순대나 족발 트럭이 오는 수준이 아니라 각종 국과 반찬, 과일과 해산물, 돈가스와 갈비, 닭강정, 족발, 빈대떡, 손두부, 아동복, 양말, 이불, 전구, 헌책, 원예, 장독대 등등등 여느 시장 부럽지 않은, 말 그대로 '장날'이다. 역시나 구경만 하다가 돌아오면서 다짐했다. '다음 주엔 뭐든 하나 사오리라.'


그다음 주에는 지갑을 들고나갔다. 우선은 먹거리가 제일 만만하겠지. 커다란 가마솥에서 팔팔 끓고 있는 육개장과 한 모에 5500원짜리 손두부를 사서 돌아오면서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메뉴는 육개장이니 기대하라는 둥, 내일은 점심에 두부를 먹을 거라는 둥 신나서 한참을 떠들었다. (저녁 준비 시간이 줄어든 것은 덤:))


(지난번 어렵게 등업한) 동네 카페에 검색해보니 화요장터에 오는 아동복 트럭은 이미 유명해서 차 타고 옆동네에서도 오는 모양이었다. 그다음 주에는 슬쩍 아동복 트럭을 기웃거렸다. 사이즈별로 박스에 옷이 잔뜩 쌓여있었는데, 조심조심 뒤적거리니 사장님이 "막 보셔도 돼요. 옷이 그렇게 있어서 그렇지 질 좋은 옷들이에요" 하셨다. 온라인 상세페이지를 보거나 매장에 걸려 있는 옷을 고르는 건 익숙한데, 어떻게 골라야 할지 막막했다. 이건 또 새로운 방식의 쇼핑이군. 그날은 결국 사지 못했지만, 다음엔 꼭 애기 내복을 하나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말에 식물 많은 카페에 갔다가 꽂혀서 몬스테라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도 화요일을 기다렸다가 장에 갔다. 원예 사장님에게 몬스테라가 있는지 묻자, 오늘은 없지만 다음 주에 가져다주겠노라 했다. 그럼 다음 주에 화분을 가져올 테니 옮겨 심어 달라고 말하고 돌아오면서는 진짜 동네 주민이 된 기분이 들었다.


지난주에는 고등어 두 마리를 사다가 일주일 내내 구워 먹었고, 오늘은 오징어 세 마리를 샀다. 오징어 손질을 부탁하면서 "지난번에 고등어가 맛있더라고요" 말을 건네면, 서글서글한 서너 마디가 돌아온다. 오빠가 주문한 단호박 하나와 육개장 2인분, 몬스테라 화분을 찾아서 돌아오는 길. 지나가는 할머니들도, 처음 보는 가게 사장님들도 쉽게 말을 건넨다. "애기가 예쁘네요"로 시작하는 다정한 말들.


이 동네에 산 지 4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동네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이건 또 나름대로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 주에는 뭘 살까. 여긴 사실 돈가스가 제일 유명하던데, 다이어트 끝나면 꼭 사 먹어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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