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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18. 2021

정체기에 대처하는 자세

띵동. 문 앞에 물건이 잔뜩이다. 생수와 각종 식재료들. 오빠가 또 장을 봤나 보다. 요즘 주방을 담당하고 있는 남편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장을 본다. 오늘은 또 뭘 샀으려나. 생닭가슴살, 당근, 파프리카, 김밥말이, 면포, 현미빵, 현미 라이스페이퍼, 바질 가루... 누가 봐도 다이어트식 재료인데, 빵과 라이스페이퍼는 '현미'로 고른 디테일이 귀엽다. 빵 안 먹는다고 하면 '현미는 괜찮잖아'라고 할 게 뻔해서.


냉장 식품들을 넣어두려고 별생각 없이 냉장고를 열다가 작은 메모를 발견하고 혼자 빵 터졌다. 덩치에 안 맞게 작고 동그랗게 오린 메모지가 귀엽고, 나름 조개 자석으로 고정한 것이 귀엽고(자기 딴엔 그게 제일 예뻐 보였겠지), 삐뚤빼뚤한 글씨도 귀엽다. 남편은 매일 아침을 챙겨주는 것으로 내 운동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결과물이 영 시원찮아 고민이다. 운동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었다. 두 달 동안 주 5~6일을 운동했는데 몸의 변화는 미미하다. 너무 미미해서 놀라울 지경. 운동도 운동이지만 매일 때 맞춰 끼니를 챙겨 먹는 데 꽤 많은 노력이 들어가다 보니, 하루 한 시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에 만족했던 초심을 잊고 자꾸 욕심이 생긴다.


많은 게 평소와 다른데, 왜 내 몸은 똑같은가. 2주 만에 인바디를 재고 힘이 쏙 빠지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정체기인가. 아니, 빠지다가 정체가 되어야 정체기 아닌가? 이건 뭐 시작도 하기 전에 정체부터 되어 있다.

이럴 때 답은 아주 명확하다. '졸꾸' 하는 것. 운동뿐만 아니라 일도 그렇다. 공부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일이 그렇다. 답은 아는데,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를 않네.


‘비가 오나 날이 맑으나, 숙취에 시달리든 팔이 부러졌든, 그 사람들은 그저 매일 아침 8시에 자기들의 작은 책상에 앉아 할당량을 채우지요. 머리가 얼마나 텅 비었건, 재치가 얼마나 달리건, 그들에게 영감 따윈 허튼소리.’
- 레이먼드 챈들러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 일단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 임경선 <태도에 관하여>


글을 쓰기 싫은데 써야 할 때, 아니면 글을 써야 하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저 두 문장을 자주 꺼내 읽었다. 그리곤 꾸역꾸역 노트북 앞에 앉았다. 졸꾸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단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마침표를 찍고 나면 시원했다. 그래서 지금은 안다. 졸꾸의 힘을!


이전까지 정체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었다. 권태기가 올 것 같으면 서둘러 이별을 고했고, 인정을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사표를 던졌고, 외모에 변화가 필요하면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는 식으로. 매번 타당한 이유를 만들고 합리화를 했지만, 아마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둬버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많아졌다. 회사가 아닌 내 일, 연애가 아닌 결혼 생활, 그리고 아이, 무엇보다 평생 내가 쓸 몸. 쉽지 않더라도 균형을 잡아가며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되도록 오래!


내일 아침 운동이 가기 싫어 말이 길어졌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옆에서 아이를 재우며 아침 메뉴를 고민하는 오빠를 생각해서라도 졸꾸 해야지. 파이팅................................




**졸꾸는 '졸라 꾸준히'입니다. '존버'의 형제쯤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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