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영덕에 다녀왔다. 3년 만이다. 친구의 시댁의 별장이 있는, 길 건너에 '포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영덕의 끝자락. 잘 꾸며진 정원과 아담한 텃밭과 키 작은 감나무가 여럿 있는 멋진 집이다. 집을 나서면 바로 앞에는 초록초록한 산책길이, 길 건너에는 아기자기한 바닷가 마을이 펼쳐져 있다.
다섯 시간이나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시시하다. 산책하고, 아무 데나 앉아서 커피 마시고, 또 산책하고, 맥주 마시고, 또 산책하고, 밤이 되면 멕시카나 치킨에 넷플릭스 영화 보며 노닥거리는 것. 동네 식당에서 잡어 회를 사다가 쌈장에 휘휘 섞어 먹은 것이 바닷가에 온 기념으로 한 유일한 일이었다.
아침에는 혼자 집을 나섰다. 세수도 안 하고 오빠 티를 주워 입고 어제 걸었던 반대편 길로 천천히 걸었다. 관광객도 없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 동네 사람들은 어제와 같이 자기들의 일을 하고, 동네 강아지들은 한가롭게 졸고, 바다는 내내 반짝거렸다.
나무 아래 앉아 발꼬락에 바람을 쐬면서 '때에 맞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은 봄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가을은 가을답게, 겨울을 겨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20대는 20대답게, 30대는 30대답게, 40대는 40대답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너무 미숙하지도 조숙하지도 않게, 그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산부였을 때는 '임산부 같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다. 애기 엄마인 지금은, 사실 애기 엄마 같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는 빨리 스무 살이 되고 싶었고, 인터뷰를 하러 다니던 20대 때는 프로페셔널한 30대로 보였으면, 30대에는 다시 20대로 보였으면 했다. 줄곧 그런 생각을 하다가 '때'를 만끽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해야 하는 일도 없고, 의식의 흐름대로 시시하게 보낸 주말이 너무 완벽해서, 조금도 아쉽지가 않았다.
여름에 겨울을, 겨울에 봄을 기다리며 살지 말아야지.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해야지. 오늘도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