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와 맞이한 첫 어린이날. 혼자서 동네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쓴다. 꼭 가봐야지, 생각만 했던 창이 많은 이층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 밖에서 먹는 커피는 꿀맛이다.
어린이날에 일을 쉰다고 시부모님이 아침 일찍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이제 빨간 날에는 우리가 여름이 봐줄게. 푹 쉬다가 저녁 먹으러 오렴.” 그 말이 감사하기도 얼떨떨하기도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요 며칠 부쩍 낮잠을 안 자는 여름이 덕분에(!) 월요일마다 쓰는 글도 못쓰고, 마감을 했는데도 보도자료에 전혀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이다.
‘애기 보내고 일이나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덥석 알겠다고 했지만, 한 나절이라도 필요한 것은 며칠 준비물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짐 챙기는 것도 일이었다.
젖병에 한 번 먹을 양만큼씩 분유를 덜고 분유 포트와 이유식, 중간에 간식으로 먹을 요거트와 과자, 숟가락, 손가락 칫솔, 장난감, 기저귀와 손수건, 아기띠, 여벌 옷과 장난감 등을 챙기니 짐이 한 보따리. 이럴 거면 그냥 데리고 있는 게 낫지 않나, 하면서도 아기 의자도 챙겨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부모님이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짐을 챙겨서 오빠와 나눠 들고 1층으로 내려가니 벌써 차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래, 이럴 때 어른들도 손주 보고, 여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나도 혼자 시간을 갖는 거지.’
“여름아 잘 놀고 있어. 저녁에 데리러 갈게.”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해맑은 아이를 보내고 그 길로 오빠도 출근을 했다.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올라가는 길, 날씨는 너무 좋고 길에 유모차가 왕왕 눈에 띄어서 여름이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이런 날 어디라도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집에 도착해서 침대에 엎드려 누우니 스멀스멀 입꼬리가 올라간다.
‘뭐지? 왜 이렇게 평화롭지? 뭐지?’
한 시간을 뒹굴거리다가 아침에 못 간 운동을 하러 갔다. 오빠 출근 시간 전에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뭐지? 시계 안 보고 운동하는 게 왜 이렇게 좋지?’
운동을 마치고 그대로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아 리파 노래를 세상 커다랗게 틀어 놓고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뭐지? 노래 크게 틀고 샤워하는 게 얼마 만이지?’
TV로 유튜브 앱을 켜고 <놀면 뭐하니?> msg워너비 프로젝트를 찾아 들으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슬픔 활용법>을 듣다가 찔끔 눈물도 흘렸다.
‘뭐지? 노래 듣다가 눈물 난 거 얼마 만이지?’
어머니는 집에서 푹 쉬라고 했지만, 시간도 날씨도 아까워서 해가 지기 전에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선크림을 정성껏 펴 바르고 좋아하는 주황색 재킷도 걸쳤다. 언제 이렇게 나뭇잎이 초록초록 해졌나,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구나, 반짝반짝 햇살이 너무 예쁘네, 하면서 걷는 길. 별 게 다 새삼스럽고 좋아서 괜히 여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참 이상하다. 여름이로 인해 일상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게 딱히 싫었던 적은 없는데, 여름이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이렇게 좋을 일인가.
카페에 오기 전에 오빠 가게에 잠깐 들렀다. 낮에 뭘 했는지 종알종알 떠드는 들뜬 얼굴을 보더니 ‘좋다, 앞으로 종종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네’ 하는 오빠. 이런 시간이 있어야 같이 있을 때 더 예뻐할 수도 있는 거라고, 주말에는 여름이 데리고 셋이 재미있게 놀자고, 맨날 가던 카페 말고 지난번 가고 싶다던 그 카페에 가보라고 얘기해준 오빠 덕분에 지금 여기에 앉아 있다. 안 그래도 좋은 기분에 카페인이 들어가 기분은 최고조. 이제 집중해서 일을 하고 얼른 집에 가서 여름이 볼에 뽀뽀 열 번 하고 싶다.
다음 빨간 날은 석가탄신일이다.
석가탄신일에는 꼭 보고 싶었던 전시를 보러 가야지.
유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