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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pr 06. 2021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출산 7개월,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했다. 무려 아침 운동을!

매일 아침 8시에 알람이 울리고, 여름이가 깨서 울든 말든 8시 15분이면 두 남자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선다.

바깥공기 마실 필요도 없이 건물 2층에 있는 센터를 등록했다. 애기 엄마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금이니까.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PT를 받고 나머지는 개인 운동을 한다. 가서 한 시간 내내 스트레칭만 하더라도 매일 가려고 애쓴다. 지금껏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했지만 운동하러 가는 길이 즐거운 건 처음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심지어 아침에, 게다가 자발적으로! 아마도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잘' 살고 싶다.



나는 건강한 임신부였다. '출산과 육아는 체력전'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고, '애기 몸무게+양수+태반 무게를 뺀 나머지는 엄마 살'이라는 강박이 있었기에 임신 기간 내내 꾸준히 운동을 했다. 땀 흘려 홈트를 하고 매일 산책을 하고 계단을 올랐다. 분명 임신 전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 +10kg으로 선방했다 생각했다. 온몸의 근력과 지구력과 정신력 등등을 끌어모아 4시간 반 진통 끝에 3.05kg 아기를 낳았다. 자, 이제 10kg에서 우리 여름이 3.05kg+양수+태반+등등 빼면 2~3kg 정도 남으려나? 희망을 가지고 올라간 체중계에는 출산 직전 무게에서 정확히 1kg을 뺀 몸무게가 적혀 있었다.

????? 계산이 왜 그렇게 되는데.


조급하지는 않았다. 난 산모니까. 몸무게를 보고 남편과 둘이 킥킥 웃으며 '여름이 아직 배 속에 있는 거 아녀?' 하며 퇴원수속을 밟았다. 조리원에서 빠진다, 마사지받으면 빠진다, 모유 수유하면 빠진다, 다이어트 생각 말고 산후조리에 힘써라... 그 말을 믿고 최대한 잘 먹고 잘 쉰 결과, 출산 후 7개월, 정확히 애기 몸무게 3kg만 빠졌다. 몸무게는 둘째치고 점점 체력이 떨어졌다. 애기는 날로 무거워져 무릎도 아프고, 날씨는 슬슬 풀려가는데 맞는 옷은 없고, 처음으로 너무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될 것 같아 운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혼자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남편이 출근하기 전과 퇴근한 이후. 퇴근 후에는 저녁 먹고 애기 씻기고 재우고 함께 집안일을 하느라 바쁘니 출근 전 아침 시간을 활용해야 했다. 최대한 이동 시간을 줄이려면 가까워야 했고, 다행히 같은 건물에 괜찮은 센터가 있어 유모차를 끌고 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통보했다. '나 운동을 해야겠어, 아침 수유는 오빠가 맡아줘.'



그렇게 운동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몸의 변화보다는 생활의 변화가 크다.

우선, 되는 대로 아무 거나 먹던 습관을 버리고 정해진 시간에 되도록 건강한 한 끼를 먹는다. 아기를 보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흐른다. 4시간에 한 번씩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놀아주는 사이사이에 호다닥 식사를 해야 한다. 낮잠 자는 동안 공들여 밥을 차리고 드디어 한 숟가락 뜨려는 순간, 똥기저귀를 갈거나 자다 깨서 칭얼거리는 아이 옆에 같이 눕는 일이 다반사. 그러니 자꾸 간편한 음식을 찾는다.


운동을 시작한 후, 가장 중요하고 번거로운 일이 식사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찍어서 선생님께 보고해야 한다. 나도 여름이처럼 4시간에 한 번씩 먹는다. 아기가 먹는 시간과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내가 먼저 먹은 뒤 아이 밥을 먹인다. 체중 감량이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식단에서 큰 변화는 없지만, 하루에 한 끼는 꼭 채소를 챙겨 먹고, 배달 음식 대신 집밥을 차려 먹으려고 노력한다.(굉장한 노동이다) 그 와중에 즐거움을 찾자면, 무가당 요거트, 바나나, 단호박, 고구마, 사과 등 아이를 위해 쟁여 놓은 간식들이 의외로 운동 식단과 찰떡궁합이라 여름이와 나란히 앉아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오빠의 할 일이 늘었다. 내가 운동을 하는 동안 오빠는 아침 수유를 하고, 분유 포트에 내가 먹을 물까지 넉넉하게 데우고, 양상추를 씻고, 계란을 삶고, 사과를 잘라둔다. 운동을 마치고 온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다시 주방에 들어가 오목한 접시에 양상추와 사과와 계란을 담아 두유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주고, 조금 작게 자른 사과 한 조각을 여름이 손에 쥐어준 뒤 씻으러 들어간다. 덕분에, 정말 덕분에 한다. 무려 아침 운동을!


아침 풍경이 달라지면서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몸의 코어는 여전하지만 마음의 코어는 조금씩 단단해지는 기분이 든다. 일과 육아를 가까스로 병행하면서 둘 중 하나가 마음처럼 잘 안되면 자책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SNS를 들락거리며 괜히 심란해하는 일도, 새벽까지 잠 못 들어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많이 줄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고 밥을 차려먹다 보면 낮잠 잘 시간이 없고, 낮잠을 안 자니 밤에 똑 떨어져 꿀잠을 잔다. 잡생각이 많고 마음만 바빠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참 어려웠는데, 핸드폰을 내려놓고 몸에 집중하는 한 시간이 꽤 큰 활력이 된다.


슬프고 당연하게도 아직 몸의 변화는 크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작심 3일, 작심 일주일을 견뎠으니 앞으로 3개월 동안은 꾸준히, 즐겁게 운동을 해봐야겠다. '몸'의 변화는 3개월 뒤에 다시 적어봐야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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