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봤던 전시 중에 가장 좋았던 걸 하나 꼽으라면, 회현동 피크닉에서 했던 매거진 B 10주년 기념 전시를 고를 것이다.
전시는 각각의 브랜드에 집중했던 매거진 B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의 브랜드로 쌓아 올려진 과정을 물건과 글과 사진과 영상으로 촘촘히 보여주었다.
그동안 다뤘던 브랜드의 물건들을 전시한 2층도 재미있었고(제품이 있다면 그걸 올려놓으면 되지만 물성이 없는 건 어쩌나 했는데 아이맥에 켜 놓은 구글 검색창, 헬베티카 총집합, 영상으로 띄워놓은 도시 시리즈에서 에디터들의 고민과 유우머가 총총 엿보였다), 3층에 8개 브랜드 창립자 인터뷰 영상이 특히 좋았다.
그중 매거진 B 창립자 조수용 대표의 인터뷰가 있었다. 영상 속 그가 말했다. "돈 많이 벌면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세요."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 그 한마디가 남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내내 생각했다.
나는 돈 진짜 많이 벌면 뭐할까.
쇼핑에 진심인 편이지만, 의외로 물건을 많이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이나 차에도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 의미 있는 일도 일 순위는 아니다. 고민이 길어지자(왜 이런 고민을 이토록 진지하게 하고 있나 싶은 마음과 함께) '만약'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답을 내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이 든든하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돈과 시간을 들여 하고 있는 일.
돈이 아주 아주 많다면, 평생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배우면서 살고 싶다. 언어를, 운동을, 악기를, 특히 기술을! 빵이나 도자기를 굽는 기술, 그림을 그리는 기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기술... 그래서 재주 많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일상을 내 손으로 잘 꾸리고 사부작사부작 주변을 넓혀가면서, 때때로 그걸 남 주면서 살고 싶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답이 시시해서 스스로도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내 그릇은 소담해.
사는 동안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벌고, 돈이 아주 아주 많아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변이 없는 한 지금처럼 돈과 시간에 구애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 와중에 하고 싶은 것들을 꾸역꾸역 하면서 살겠지. 통장이 매우 빈약하고 여름이에게 내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기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이런저런 클래스를 기웃거리는 지금처럼 말이다.
전시를 보고 온 이후, 친구들을 만나서 종종 묻는다. “너는 돈 많이 벌면 뭐 할 거야?” 돌아오는 답은 모두 제각각이고, 그 답들이 또 참 자기답다.
남편은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살림할 거라고 했다(어울린다 어울려!). 그럼 나는 물질을 배워서 전복도 따고 해삼도 잡아 와야지. 빵도 굽고 접시도 굽고 전복도 구워서 전복빵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동네 할머니들과 나눠 먹을 거다. 동네 목수 아저씨에게 목공도 배워서 내 손으로 테이블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면 좋겠다. 그리고 여름이 친구들을 모아다가 글과 그림을 가르쳐야지. 애들이 그린 그림으로 책을 한 권씩 만들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