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정의하는 게 쉽고도 어렵다. 찐친이니 베프니 몇 번째로 친하니 그런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던 시기가 있었고, 친구의 수가 곧 나를 대변하는 것만 같던 시기를 지나, 친구가 별 건가 그냥 인생의 어떤 순간을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친구지,라고 생각하는 시기에 도착했다.
직장 동료로 만났지만 어느새 친구 말고는 설명할 단어가 없는 이들도 있고, 오래된 친구지만 남보다 못한 이들도 많다. 연락이 끊어졌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그런 관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하나의 점에서 만나는 시기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한 번에 그치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개인 사람도 있는 거라고.
서연은 10년 만에 점을 덧칠한 친구다.
서연과 나는 스무 살 때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함께한 십여 년 간 내내 친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스무 살 때는 서로를 싫어했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내내 부딪쳤다(국문과+기분파였던 나와, 수학과+논리파였던 서연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자주 함께 놀았지만 여럿 중 하나로 10년 정도를 보냈던 것 같다. '친하면서도 서로를 잘 모르는, 만나면 재미는 있지만 접점이 없는' 그것이 우리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수식이었다.
관계에 변화가 생긴 건 넷이 가기로 했던 여행을 둘이 가게 되면서였다. 둘이 떠난 여행은 재미가 있지도 없지도 않았다. 오래되었다고 모두 좋은 친구인 것은 아니다. 오래된 만큼 과거의 어느 순간에 서로를 가두고 시시콜콜 프레임을 씌우기도 쉽다. 우리는 서른이 넘은 서로에게 스무 살 적 프레임을 씌워두고 있었다는 걸 그 여행에서 깨달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제 그만 스무 살의 서로를 놓아주기로 했다.
그때 이후로 둘이서 만나는 날이 잦아졌다. 더 이상 “그때 니가 그랬잖아!!!" 같은 유치한 말을 하지 않아도 깊고 유쾌한 대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하다. 더 나은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되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 객기를 부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10년 뒤에 다시 서로의 ‘지금’ 대해 이야기하고 서른에 덧씌운 프레임을 청산하자고 했다.
영대는 그 점이 끊이지 않고 선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친구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다른 지역에서 다른 전공을 공부하고 다른 일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같은 점에서 자주 만났다. 비슷한 취미를 가졌고 비슷한 고민을 했고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했다. 얼마 만이든, 뜬금없이 전화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
20대에 우리는 두어 번 함께 살았다. 허구한 날 허튼짓을 하고 돌아다니던 시절, 자괴감을 매달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영대 방문을 두드렸다. 영대가 누워 있는 뜨뜻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떠오른 생각들을 필터 없이 털어놓았다. 남의 이목이 중요한 내가 어쩜 그렇게 모든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일을 했든, 그걸 '나'로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아무리 커다란 일도 영대의 한결같은 한마디, '오, 좋은 경험 했네'를 들으면 진짜 '좋은 경험'으로 끝났다. 덕분에 나도 스스로를 함부로 정의하지 않게 됐다. 그게 지금까지 내 튼튼한 자존감의 원천이다.
부모만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친구도 아이를 키운다. 영대 옆에서는 '무엇의 무엇'이 아니라 그냥 내가 된다. 내가 가진 것이 모두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 때, 영대에게 전화를 건다. 모든 게 별로야,라고 말하면 왜 너는 그거 잘하잖아. 왜 나는 좋던데.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 애의 진심이라는 걸 알겠어서 흐물흐물 풀어져 위로를 받는다.
운이 좋게도, 그리고 고맙게도 중요한 시기마다 과분하게 좋은 친구들이 있어 주었다. 갈수록 진해지는 내 주근깨처럼 곁에 남아준 점들은 물론이고, 점을 쾅쾅 찍고 홀연히 과거가 된 친구들도 잘 지내면 좋겠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서로의 삶에 작은 점을 찍을 날이 있기를 바란다고, 혹시 평생 그렇지 못한대도 각자 잘 살자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내 곁을 지나치는 새로운 친구들에게, 영대처럼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한다. 무엇도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정의하지 않고, 모든 게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 때 고민없이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