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어딘가에**
몇 번을 글을 쓰고 지우다 휴대폰을 껐다.
‘누군가 하겠지.’
3월이면 어김없이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친구들이 있다. 오 년째 3월이면 모였다. 그달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단톡방을 검색해 보니 작년 그대로였다.
‘올해는 안 모이려나. 이번엔 내가 만남을 추진해 볼까.’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가 도로 책상 위에 두었다. 물을 마시고 돌아온 사이 톡이 와 있었다.
‘글 취합해 보내드립니다. 읽어와 주세요.’
모임장의 톡이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모임이었다. 나를 포함한 9명의 글이 있었다. 다운 버튼을 누르고 책상에 앉았다. 덧붙일 말을 쓰며 읽었다. 다 읽지 못했는데, 나가야 할 시간이 됐다. 서둘러 옷을 챙겨 약속 장소로 향했다.
“네가 없는 이번 겨울은 지리하게도 끝나지 않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겨울을 미워만 하고 싫어하지는 못할 것 같아.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네 번째 낭독자가 마지막 문장을 읊었다. 모임은 작가가 쓴 글을 낭독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글에 말을 얹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글마다 먼저 운을 떼던 모임장도 이번에는 잠시 침묵했다. 온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A4 용지를 매만지는 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조심스레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아직 이별 중이신 거 같은데, 글로 쓰시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직 소화되지 못한 아픔을 그녀는 담담히 쓰고 읽었다.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네가 좋아하는 거…’
마지막 문장이 자꾸만 입에 맴돌았다. 내 차례가 왔다.
“이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최근에 썸이 깨졌거든요. 연애하고 이별하니까 남는 게 있네요. 저는 남는 것도 없는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게 웃으면 안 되는 건데...”
“괜찮아요.”
어리둥절했지만, 가벼워진 공기에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강아지 마냥 폴짝폴짝 뛰는 그와 겨울을 즐겼다. 그를 애도할 꺼리들이 그녀에겐 있었다. 나에겐 그의 취미도, 좋아하는 음식도, 그를 애도할 추억도 없다. 기억을 헤집었다. 언젠가 그가 내게 손을 내민 적이 있다. 무심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그 손의 의미를 묻지 못했다. 그가 다시 손을 내밀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저희 오늘 모임은 이것으로 마치고요, 남아서 뒤풀이하려고 합니다. 드시고 싶은 거 말해주세요.”
마침, 오면서 족발이 눈에 들어왔다.
“오면서 보니까, 되게 맛있어 보이는 족발집이 있더라고요. 족발 어떠세요?”
“이런 적극적인 의견 너무 좋습니다.”
족발과 맥주로 뒤풀이는 빠르게 끝났다. 지하철까지 걸어갔다. 찬 바람에도 패딩 안쪽이 촉촉해졌다. 외투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의 날듯 말 듯 한 땀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계절은 겨울을 다 끝내지도 않고 봄을 들이밀고 있었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두 눈을 번갈아 가며 닦던 손이 옷을 문질렀다. 고개를 들었다. 낯선 남자의 엉덩이가 보였다.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그의 엉덩이가 움직였다. 그는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빼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의 힘에 따라 회색 츄리닝에 주름이 생겼다, 없어졌다. 올라가는 광대를 붙잡으려 애썼다. 이별 중인 내 앞에, 하체 운동 중인 사람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