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빛이 내 어둠처럼 느껴질 때**
내가 나를 잘 모를수록,
열등감은 쉽게 내 안에 자리를 잡는다ㅡ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여주인공 곁에는 늘 절친이 있다.
전화 한 통이면 뛰어와 주고,
힘들 땐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가슴 어딘가에 찬바람이 스친다.
내가 뭔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득 떠올려본다.
누군가에게 아무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그 오래된 열등감이 느닷없이 되살아났다.
저자는 열 해를 함께한 절친과의
사소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서로의 연애사를 모두 꿰뚫고,
한 공간에서 각자 할 일을 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내 삶에서는
언제부턴가 볼 수 없게 된 얼굴이었다.
글을 읽는 동안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인연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고3 때부터 이어져 온 친구들부터
사소한 계기로 닿은 연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
긴 시간에 비해 서로의 연애사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너무 멀어지지도,
지나치게 가까워지지도 않으며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관계다.
최근 몇 가지 일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일 년에 한 번 만날지라도,
이런 관계들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걸 말이다.
같은 취향의 힘을 알게 해 준 인연들도 있다.
소설 합평 모임과 독서모임 사람들이 그렇다.
합평 모임은 주기적으로 만나며
서로의 문장을 들여다보고,
미처 보지 못했던 생각의 틈을 열어준다.
두 번의 신춘문예를 함께 지나오며
누군가는 지치고,
누군가는 앞서 달려갔지만,
우리는 박수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계속 함께 걸어가고 있다.
독서모임은 예전만큼 자주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날에는
머릿속이 환해진다.
인사이트 가득한 강연을
막 듣고 나온 것처럼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일터에서 만난 인연들도 있다.
같이 일을 하며
의견이 부딪히고,
감정이 상한 순간들을
여러 차례 지나온 사람들이다.
그 시간을 통과했기에,
가장 민낯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의 상사와 동료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출근 전에 만나 밥을 먹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친밀해진다.
이대로 회사가 아닌
집으로 가고 싶다는 공통의 마음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동료는
서로의 온도를 나눠주는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다.
힘든 날이면
퇴근길을 함께 걸으며
말없이 곁 지켜준다.
그런 그녀에게 며칠 전,
살짝 서운함이 든 적이 있다.
그녀가 롯데월드
새벽 이벤트를 신청했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녀는 내가
놀이기구를 타는 것보다
야간 퍼레이드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에게 같이 해보자고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금세 섭섭함이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한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시적으로만 운영되는
운경고택이 오픈했을 때,
나 역시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옥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지만
함께 있어야 충전되는 사람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힘을 얻는 사람들이란 걸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우리에게는 그 적정한 거리가
오히려 관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온도인 것이다.
관계를 하나씩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의 만남,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거리감이
나에게 가장 편안한
방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숨이 조금 가라앉았다.
타인의 깊은 친밀함 앞에서
잠시 위축되었던 마음이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동안 쓸데없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기죽였던 나를 탓하다가
그마저도 바로 놓아버렸다.
이 감정이 아니었다면
잊고 지내던 사람들을
이렇게 차분히
떠올릴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가끔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굳이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그들의 안녕을 바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열등감은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작은 흔들림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