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II

**무너진 나를 다시 안아주는 힘**

by 윤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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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나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나가 느 편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라.


계춘할망과 혜지가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할망이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이며

혜지에게 말했다.


12년 만에 찾아온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녀가

웬일인지 집에 적응을 못한다.


그날, 동네 주민들이 찾아와

할망에게 언성을 높였다.


혜지가 동네 아이들에게 해가 된다며

따지듯 말을 쏟아냈다.


할망은 그들의 하소연을 단숨에 제압했다.


“애기 없을 적에는

어디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장담들을 해대더니만,

이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애기

잘 살게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게 뭣하는 짓들이 가!”


할망의 호통에 이웃들은 주춤거리다

하나둘 마당을 떠났다.


뒤이어 혜지가 뒷마당으로 나갔고,

그 뒤를 할망이 조용히 따랐다.


그렇게 둘은 바다를 보며 나란히 앉았다.


할망은 혜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줄 뿐이었다.


자신에 대한 소문을 혜지라고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할망은 어떤 말이나 질타 대신

‘나는 네 편’이라는 마음을 건넸다.


그 마음은 혜지의 가슴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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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라는 단어가

내게 스친 순간의 감각을 기억한다.


분주하던 몸이 멈추고,

심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천천히 솟구쳤다.


어디서, 어떻게 그 말을 들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 감각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스스로를

‘냉혈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웬만한 순간에는

감정이 쉽게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어야 할 순간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아

난감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차올랐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누르며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영화 **〈계춘할망〉**의 예고편이었다.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내 삶에 어떤 결핍이 있는지도 몰랐다.


원래부터 텅 비어 있어서,

비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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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랑의 본질을

할망이 혜지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조용히 드러내며,

그 마음 하나가 한 존재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지를 보여준다.


그날은 혜지가 밤늦게야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학교를 마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집에 오지 않는 손녀를,

할망은 문밖을 오가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을 서성이고 나서야

가방도 없이 걸어오는 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할망은 엉거주춤 달려가며 말했다.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힘들었을 아이의 짐을 들어주려다

가방이 없는 것을 보고 묻는다.


“책가방은?”


혜지는 당황하며,

학교에 두고 왔다고 답한다.

할망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무거운데, 학교에 두고 오면 되지.”


보통의 부모였다면

아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잔소리나 꾸중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그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들의 염려와 걱정 역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망의 애정은

그들의 것과 조금 달랐다.


할망의 사랑에는

자신의 염려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손녀의 안위만 있었다.

혜지가 그 자리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지켜주는 마음만 존재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진정한 사랑이란,

누군가를 바꾸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말이다.


혜지를 바라보던 할망의 눈빛이 바로 그랬다.


할망에게는

현재의 혜지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었다.

혜지는 혜지일 뿐이었다.


이 감각 하나가 혜지를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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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저 시선이 나에게도 향한다면 어떨까.


우리 뇌는 사실과 상상을

완벽히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속여보기로 했다.

할망이 혜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말이다.


스크린 속 할망의 눈을 보며

그 시선을 온전히 받아냈다.


그리고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가슴이 저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계속 봤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따스한 온기가 조용히 퍼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할망의 마음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닿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사소한 장면들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길 가던 강아지가 작은 발로 흙을 터는 모습,

두 손을 번쩍 든 채 안아 달라며

엄마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얼굴,

책장을 넘기다 종이에 손이 베여

잠깐 아파하던 친구의 표정,

이별로 울음을 터뜨리던 친구의 떨림까지—


그들의 슬픔과 기쁨에

함께 울고 웃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 번 따뜻함을 맛본 사람은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요즘도 가끔 그 영화를 다시 본다.

하지만 예전처럼 몇 장면만 붙잡지 않는다.


한 장면, 한 장면의 희로애락과

모든 인물의 감정을

그저 함께 겪듯 바라본다.


이제는 어느 감정 하나도

가볍게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혜지의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

아직 마음을 다 열지 못한 혜지에게

건넨 말이 있다.

이 말을 끝으로 글을 닫고 싶다.


“네 인생사도 참 많이 억울했겠지.
그 억울했던 시간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결국엔, 네가 선택할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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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어릴 적 혜지가 할망에게

하늘이 넓은지,

바다가 넓은지 묻는 장면이 있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던 할망이 말했다.


“바다가 넓지.”

“어떻게 알아? 끝까지 가봤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있어.”


바다가 하늘보다 넓은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혜지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그 이유는,

곧 할망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유가 궁금하다면,

영화를 통해 천천히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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