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나를 다시 안아주는 힘**
이른 새벽이었다.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눈이 떠졌다.
등줄기가 축축했고
어둠 속에서 심장이 작게 웅크리는 느낌이 들었다.
꿈을 꾼 것 같았지만
내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오래전에 겪었던 통증이
가슴에 소환됐다.
가끔은 잊고 지내던 장면과 감각이
아무렇지 않게 불쑥 얼굴을 내민다.
오늘도 그랬다.
왜 오늘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은 이미 과거에 닿아 있었다.
그 사건은 아주 오래전,
식탁 위에서 벌어졌다.
7살 여자아이가 식탁 끝에 조용히 앉았다.
바닥에 닿지 않은 두 발이 허공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맞은편에서는 아빠가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빠의 얼굴이 활짝 펼쳐진 신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접시 위의 반찬을 천천히 떠 넣었다.
밥을 뜰 때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젓가락이 그릇과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식탁 위로 가볍게 떨어졌다.
아이는 손등으로 이마를 한 번 쓸고
조심스레 아빠를 바라봤다.
신문 뒤에 숨은 얼굴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가 앉은 쪽으로는 시선이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는 한 가지 궁리를 했다.
아빠가 좋아할 만한 신문 속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아빠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는 기대에 찬 눈으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환율이 뭐예요?”
‘탁!’
아빠의 손이 고개보다 먼저 움직였다.
아빠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세차게 식탁에 내리치며 말했다.
“너는 몇 살인데, 아직도 그걸 모르니?”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아이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흐려진 시야 사이로
다시 신문을 집어 드는 아빠의 손이 보였다.
그날 아빠의 싸늘한 눈빛은
아이의 마음에
길고 날카로운 무언가를 깊게 새겨 놓았다.
이후 아이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서툰 어른으로 자랐다.
칭찬을 들으면 불안이 먼저 올라왔고,
다정함 앞에서는 마음이 경계부터 했다.
누군가와 단둘이 있는 자리도
어딘가 편치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이 꼬이고 표정이 굳곤 했다.
마음은 가까워지고 싶은데
몸은 자꾸 거리를 두었다.
그래서 아이의 사랑은
늘 어긋났고, 더디게 움직였다.
버려질까 봐.
실망시킬까 봐.
사랑 앞에서 나는 늘 움츠러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든 이유를 아빠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언제까지 부모를 원망만 해야 할까.
원망하는 것 말고,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걸까.
그 감정 속에 머물러 있는 한,
나는 여전히
그 식탁 위의 아이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계춘할망〉*을 보았다.
그 영화가 내 마음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천천히 꺼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