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아래의 글은 일종의 '키워드 글쓰기' 같은 것으로 <학교>, <늑대인간>, <자전거>라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 하는 글쓰기였답니다. 흐름이 다소 어색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
한때 배우 송중기의 '멜로 눈깔'에 빠졌던 적이 있다. 영화 <늑대소년>에서였는데, 덥수룩한 머리에 때 묻은 얼굴로 찐 감자를 게걸스럽게 먹던 첫 장면은 진짜 야생동물의 모습이었다. 송중기가 연기했던 철수는 어떤 생물학자의 실험 끝에 탄생한 늑대인간이다. 과학자는 갑작스레 사망하고 철수는 폐가나 다름없는 시골집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이 집에 한 가족이 이사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배우 박보영이 연기한 첫째 딸 순이는 구불구불 늘어뜨린 반 묶음 머리와 스웨터만으로 로맨스 판타지의 촉촉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순이는 폐병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연약하며 예민하고 새침한 소녀였다. 인정 많은 엄마는 철수를 내쫓지 않았고, 순이는 밥이라도 제대로 먹자는 심정으로 철수를 조련하기 시작한다. 철수는 가라면 가고 기다리라면 기다리는 순둥하고 해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길들여진다.
이 영화에도 악당은 등장한다. 이 악당은 기대라는 양아치로, 순이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만 골라한다. 철수를 감싸는 순이를 보며 질투심을 느낀 기태는 철수를 자극하여 그의 폭력적인 야수성을 드러나게 한다. 결국 철수는 순이를 때리는 기태에게 분노하다 늑대의 모습으로 기태의 목을 물어뜯어 죽인 뒤 순이를 안고 숲으로 도망친다.
분노는 이토록 힘이 세다 누군가를 죽이게도 하고, 세상을 뒤엎을 혁명을 일으키게도 한다. 셰익스피어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추동하는 감정 역시 분노가 아니었을까 싶다. 선왕에 대한 애도가 남달리 길었던 햄릿, 오델로를 가스라이팅하며 이간질에 서슴없는 악인 이아고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다수의 인물이 분노에 휩싸이며 그 감정이 가장 격렬하게 드러난 작품은 <리어왕>이었다.
콘월: 이봐, 조용해! 이 짐승 같은 놈, 넌 어른도 모르느냐?
켄트: 압니다만 화났을 땐 특권이 없습니다.
콘월: 왜 화가 났느냐?
켄트: 저 잡놈이 정직성도 없으면서 칼은 차고 있어서요. 저렇게 실실 웃는 놈들은 풀 수 없이 묶여 있는 신성한 인연을 쥐처럼 두 동강 내놓고 (......) 바람 따라 변하는 주인의 기분 따라 물총새 아가리를 예, 아니요, 놀리면서 개처럼 오로지 따를 줄만 압니다. (오스왈로에게) 일그러진 그 상판은 염병에나 걸려라. (......) 이 거위 같은 놈, 들판에서 널 만나면 꽥꽥대는 너를 잡아 술안주로 만들겠다.
<리어왕, 민음사, 76쪽>
믿었던 딸들에게 배신당한 후 오갈 데 없는 노인이 된 리어왕. 역시 잘못된 판단으로 착한 아들은 내치고 못된 아들에게 속아 두 눈까지 잃은 글리스터, 변장을 한 채로 주군을 모시며 그가 후회하고 미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켄트 백작, 서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에드몬드. <리어왕>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분노에 지배되는 이들이다. (다만 글리스터의 경우 분노의 방향이 자신에게 향하는 우울과 가깝게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대사는 대부분 찰진 욕의 대잔치이다. 그 끝은 모두가 알다시피 서로 죽고 죽이는 파멸뿐이었다. 만약 이들 사이에 전쟁 대신 축구로 결투를 벌이는 룰이 있었다면 <리어왕>은 좀 달라졌을까?
왜 축구냐고? 분노를 조절하기 위한 민간요법으로 운동만 한게 없다고 한다. 걷기, 자전거 타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도 좋지만 공격성이 마음껏 표출되며 내 편이랑 협업도 가능한 축구는 건강한 분노의 표출 방식이자 희생자 없이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자자, 리어와 글리스터가 노인이라는 사실은 일단 빼놓고 생각해 보자. 리어와 글리스터, 켄트가 한편 먹고 막돼먹은 고너릴과 리간, 에드몬드가 또 다른 한 편을 먹고 한바탕 축구를 벌인다. 욕도 막 뱉어가며 실컷 달리고 땀을 쭉 뺀 다음 시원하게 샤워하고 다 같이 뒤풀이로 마무리. 축구로 이룬 아름다운 대통합이다. 정말 그들에게 칼 대신 축구공을 던져주었다면 <리어왕>은 희극이자 인류 최초의 스포츠 드라마로 명성을 떨쳤을지 모를 일이다.